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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앤티크 :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생크림 케이크. (단, 첨가물 과다 주의)

081125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분당 시너스 / 18:20~20:10 /

길거리의 스커트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그녀들의 입술은 더욱 짙은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10년만의 IMF의 재림.
괴로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난 술을 찾고, 단 것을 입에 베어문다.
알콜과 단 것.
간단한 음용행위만으로 일종의 황홀경에 이르게 해주는 '단기 황홀경 제조기'
입술 사이로 흐르는 liquor에 용해된 신음섞인 고통이여.
이빨사이 가득 낀 고난의 찌거기를 듯 씻어버리는 달디달은 무언가.
입에 베어무는 순간. 심각한 부작용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난 이미 sugar & alcohol's high

이런 술과 설탕으로 만드는 케이크를 소재로 한 앤티크는...
폐부 깊숙한 상처를 잊기 위한 혹은 상처의 실체를 마주하고 떨어버리기 위한 이들의 (감독의 욕심많은) 성장기.
<서양 골동 양과자점 : 앤티크(이하 앤티크)>



<앤티크>의 감독, 민규동 감독은  '여고괴담두번째 이야기'를 만들면서 인정받은 인물의 감정선을 유려하게 따라가는 세밀한 연출력을 가졌다. 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만들면서 상처를 가진 인물들의 서로 보듬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데있어, 따뜻한 애정을 담뿍 담은 감독의 시선은  최근 우리나라의 여타 감독들과 차별화되는 민규동 감독의 장점이다.
기본적으로 민규동감독은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세밀한 감성으로 영화속 캐릭터를 일상속 캐릭터로 조형하는데 큰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기'인 <앤티크>는 그가 고른 좋은 소재이다. 

고등학교 옥상에서 벌어지는 고등학생들의 고백과 충격으로 이어지는 오프닝은 그런 성장기를 다루는 데 일가견있는 감독의 장기를 드러내기 좋은 최적의 소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몇분 지나지 않아 그런 나의 기대에 반하는, 너무 많은 감독의 장르적 실험과 마주하게 된다.


부자집 도련님이 새로운 가게를 차리면서 겪는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에서는 드라마'커피프린스 1호점'의 냄새가...
각자가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젊은 네 청년 이야기에서는 스탠바이미와 같은 '성장드라마'가...
고등학교 옥상에서 받은 예상치못한 게이친구의 고백 케이크. 고백받은 진혁은 그 케이크를 입에 넣는 것이 아니라 선우의 얼굴에 처박아 버린다. 이 대목에서 상상할 수 있는 장르는 '유쾌한 게이친구의 복수극 + 진혁과 게이친구, 선우와의 로맨스, 퀴어 로맨틱 판타지'
선우와 함께 케이크가게를 운영하게 된 진혁. 파티쉐 견습생을 맞이하고 난 후에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에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키는 '뮤지컬 영화'가...
진혁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범인을 찾는 대목에서는 '추격자'를 떠올리게 하는 '스릴러'
범인을 검거하는 단계에 이르러 보여지는 교차편집을 통한 맥거핀은 히치콕 영화를 연상시키는 결말은 '미스터리(물론 내용은 풀리지만...)'수많은 장르영화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처음 보기 시작한 영화가, 끝날 때 본 그 영화가 같은 영환가 싶을 정도로 장르의 이종교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감독은 작품에 애정을 갖고,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케이크라는 맛과 향이 가득하고 화려한 모양새를 드러낼 수 있는 팀버튼의 '찰리와 초콜릿공장'같은 뮤지컬 시퀀스를 해보고 싶은 유혹을 맞닥뜨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드라마틱한 주인공의 사연인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스토리에 살을 덧대고 싶은 것도 마찮가지이다. 하지만 스릴러는 오버였다. 욕심이 과해 좋은 캐릭터들의 밸런스를 살려내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이다. 
모던한 케이크 가게에서 멋진 남자들의 서빙을 받으며 예쁘게 상큼한 딸기 무스 케이크를 먹고 있던 한 여자분이, 갑자기 나타난 기사식당 주인 아줌마 손에 이끌려 기대하지 않았던 매큼털털한 잡탕찌개를 먹은 그런 느낌. 그나마도 잘 정돈되지 않아 그 특유의 칼칼한 느낌도 없는 그냥 조금 찝찝한 그런 느낌말이다.

제깟게 뭐라고, 내 주제에 감독의 역량을 단정하고 재단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세밀한 연출만 하고, 다른 장르적 실험은 하지말아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기대하는 바와 다른 다소 뜬금없는 연출로 점철된 영화 앤티크를 보고 있자니, 그의 세심한 연출력이 십분 발휘되지 않은 것같아 아쉽고, 생각보다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 젊은 네명의 연기자의 연기가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쟁쟁한 모델 출신 배우 세명의 틈에서 주눅들지 않은 좋은 연기를 보인 유아인의 존재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흐뭇함을 주었기에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영화 속 대사를 빌면) 우리는 씁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케이크를 찾는다고 한다. 앤티크를 찾은 사람들의 기대감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친 일상에 피로를 풀어줄 행복한 순간을 만나고 싶어 찾은 케이크같은 영화 '앤티크'. 한없이 예쁘기만한 영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깊이 상처를 파고들길 바라지는 않았다. 감독의 욕심이 만들어낸 영화적 실험이 내겐 조금 과하게 탄 초콜릿같은 그런 씁쓸한 뒷맛을 남겨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