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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와인 미라클 : 좋은 재료를 망가뜨린 어설픈 세공술

081114 / 영화 와인 미라클(Bottle Shock) / 메가박스 / 20:00~21:40 / 지은 /


'와인 미라클'의 원제 'Bottle Shock'은 와인의 원산지에서 bottling한 와인이 비행기나 배를 통해 이동할 때 받은 쇼크로 와인의 맛이 흐트러져 본연의 맛을 찾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와인 미라클'은 저 멀리 대서양을 건너온 '하찮았던'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산 와인이 프랑스의 내놓으라하는 와인들을 누르고 블라인드 테이스팅 최고점을 받은 전설적인 사실을 기초 한 영화이다.
이는 48개나 되는 와인을 동승한 승객들에게 나눠 싣게해 화물칸이 아닌 좌석으로 가져와 bottle shock을 피하고자한 와인프로모토 '수페리어'의 노력을 통해 프랑스와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NAPPA Shock를 안긴다.




영화는 두 명의 이방인의 도전기로 시작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라는 비옥하지만 와인의 불모지에서 최고의 샤도네이를 만들고자하는 전직 변호사 '짐'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와인 프로모토로 일하지만,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수페리어'
본고장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는 텃세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짐'은 싸구려술로 히피들에게나 소비될지라도 빚을 져가면서도 오크통을 사모으는 것이며, '수페리어' 역시 프랑스 와인 협회 시음회에서 말석에서 제대로된 시음조차 할 수 없는 홀대를 받는 신세이지만, 그 꿈을 버리지 않는다.


또한 '짐'은 '보'와 함께 꿈을 키우지만 히피문화에 빠진 아들 '보'는 '짐'의 마음같지 않다.
'수페리어'도 캘리포니아에서 재기를 노릴만한 와인을 찾고자 하긴 하지만, 기대는 크지 않고 그 시작 역시 수월하지  않다.
영화 '와인 미라클은 그렇게 두 고집스러운 두 남자의 와인에 대한 눈물 겨운 사랑과 노력을 보여줄 것처럼 관객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놓는다.

하지만 그런 관객들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기대를 느끼게 되는 그 찰라에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인물을 투입시킨다.
와인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마르고 마른 나파밸리의 험한 길을 3바퀴만으로 달려온 여주인공 '샘'.
그녀는 '짐'에게 또 다른 동력원이 되어줄 것 같고, 잠자던 '보'의 열정에 불을 지펴줄 여성으로 당당하게 등장한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첫 등장 이후 어떤 곳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이 영화의 눈요기감으로 전락하고, '나파밸리 와인의 감동적인 성공기'를 향해 오롯이 달리던 영화에 쓸모없는 어설픈 러브 스토리를 덧대기 시작하며 영화의 감동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킴'과 함께 러브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구스타보'는 천재 테이스터이로 때로는 욕신많은 완벽주의자 주인공 '짐'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감정선의 굴곡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매개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짐'과 '구스타보' / '구스타보'와 '보'의 감정선은 반목과 화해만 있다. 그 과정은 드러나지 않고 드러내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어정쩡한 각본은 재앙에 가깝다.
영화가 프랑스 와인과 캘리포니아 와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벌이는 클라이막스로 치닫을 수록 영화의 그런 성근 세공술은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묵직한 풀보디의 중량감있는 감동과 입안 가득 퍼지는 감동적인 부케, '짐'과 '보'와 '수페리어'의 각기 다른 환상적인 복합적 아로마의 향연을 만나고 싶던 나에게 '킴'을 등장시킨 어설프기 그지 없는 각본과 감독의 성근 연출력은, 돋보이는 재료를 가진 영화 '와인 미라클'에서 느끼는 실망감을 돋운다.

훌륭한 떼루아르를 기반으로 든든한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가 빨아들인 진한 자양분이 훌륭한 포도를 익게 하고,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천지인(나왔다! 신의 물방울;;)'의 요소가 얼마나 많은 조화를 이루었냐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어설픈 손놀림과 세공술로 욕심을 부린 감독의 연출과 각본은 만행이다.

마치 너무 오랫동안 신선한 재료를 얻은 기쁨에 넋이 나가 너무 오래동안 손에 올려두고 바라봐 너무 익어 생기없어진 포도처럼, 신선하고 촉촉한 감촉은 사라지고, 퍼석하고 수분없는 퍽퍽한 섬유질 쪼가리가 버석버석 씹히는, 게다가 러브스토리라는 되지도 않은 양념을 가미하므로 인공적인 단맛이 좋은 재료의 성품까지 뒤덮어버린 싸구려 와인으로 변질되었다. 

사람의 힘이 필요한 경우는, 좋은 재료를 손에 넣었을 때가 아닌, 조금은 부족한 천지의 요소가 만들어낸 재료를 손에 넣었을 때 필요한 것임을 왜 감독은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최고의 샤도네이를 위해 5번 이상을 걸러낸 '짐'의 손길이 척박함을 이기기 위한, 혹은 편견을 이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었다는 것을 감독은 몰랐단 말인가.

무기교의 기교, 여백의 미가 더욱 간절히 느껴지는 영화가 바로 '와인 미라클'이다.

<< 영화 '와인 미라클'의 소재가 된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 1973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