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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슬럼독 밀리어네어 : 뭔가 구린 맛이 나는 빈민가 소년의 해피엔딩

090320 /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 삼성 메가박스 / 22:25~24:25 / 지은

누구도 상상하기 쉽지 않은 극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인도의 한 청년이 있다.
18살 청년의 드라마틱하면서도 영화같은(!) 인생역전 스토리를 담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 스포일러 있습니다)

1)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 1997년 [트레인스포팅]을 추억하다.
'이기팝'의 강렬한 비트에 맞춰 영국 뒷골목을 미친듯이 뛰어다니던 청년들이 있었다. 숨가쁘게 흔들리던 카메라에 몸을 실으면 멀미가 날 것같지만, 트레인스포팅은 혼란스런 20대를 살아가던 모든 젊은세대들에게 정신과 육체를 의탁해야할 성서같은 것이었다. 열광의 대상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아이콘이 되었으며, 펑크 비트에 맞춰 현란한 카메라 워킹을 하며 맛깔나게 욕하는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흔들리는 청춘 20대를 위한 영상들이 득세했었다. 그렇게 대니보일은 깊게깊게 각인되었다.


이후, 대니보일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화려하게 살아있음을 알리며,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무려 8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줬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는 잊혀져가던 '대니 보일'의 '트레인 스포팅' '이완맥그리거'의 질주는 미친듯 인도 몸바이의 좁디좁은 골목을 달리는 아이들의 질주와 동일하게 맞닿아있다.


화장실에서 자신의 운명같은 인생을 만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트레인스포팅'의 '이완맥그리거'가 화장실 속에서 자아와 혼란하는 모습이라면,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어린 자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똥통으로 직행해, 이미 씌어진(!) 자신의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결국은 그 미래를 거머쥐게 된다. 
꼭 같을 것같던, 두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트레인스포팅'은 조목조목 짚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젊은 날보다 더 심지곧은 어린 인생을 보여주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외향은 비슷하나 본질은 다른, 미래를 향한 꼬마의 의지를 보여주는 진일보한 영화라는 느낌이다.

2) 할리우드 영화 속 '어글리 코리안'을 보는 것같은 찜찜한 기분이랄까
어쨋든 인도를 소유(!)했던 영국의 감독이 그린 인도는 공중화장실이 푸세식일정도로 낙후되었고, 동네 아낙들이 공동 냇가에서 함께 빨래를 할 정도로 어렵게 살고 있으며,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이 드글거리는 곳이다. 관광지로 속여 데려간 곳에서는 차량을 잠시 파킹했을 뿐인데, 차량에서 팔 수 있는 부분은 모조리사라진다. 오페라를 관람하는 타지마할의 야외 공연장에서는 방심하면 소매치기당하기 십상이다. 멀쩡한 어린애들을 통해 앵벌이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유기하거나 하는 행태로 그려진 인도.

물론, 영화가 보여주고자하는 본질은 그런 부분이 아니란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 일면을 보여준 것일테고, 영화의 설정일 따름이다. 해당 설정은 주인공의 비참한 삶을 드러내고자하는 장치일 뿐이다. 다 안다. 그정도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다. 영화가 꼭 다큐멘터리처럼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만 만들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다만 우리나라 교민에 대한 비뚤어진 선입견을 심어주는 falling down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광분했던 사람으로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바라보는 인도사람들의 마음이 살짝 전달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뒷맛이 개운하지 않음이 너무 짙게 남아있다.

3) 로또 사는 직장인의 심정으로...
영화의 시작인 이 질문의 답이 D라면... 세상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할지도... 모든건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믿기에 우리는 토요일 8시 이전에 로또를 사고 '혹시나'하는 기대로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6개의 숫자를 맞춰나간다. 퀴즈쇼를 보는 심리도 그러하다. 저기 나와있는 저 평범한 셀러리맨이 수천만원을 벌어간다면, 나도 할 수 있을거라는 '인생 한방'의 꿈.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저놈은 이미 운을 타고 난 놈이라는 거다. 그래. 운을 타고난 놈. 하지만 저렇게 운을 타고난 놈이 있는거라면, 그리고 내가 그 운을 타고 난 놈이 아니라면 내 인생은 조금 우울하지 않을까. '인생 한방'의 꿈이 내 인생의 존재가치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의 기회를 엿보는 소시민에게 어찌보면 옅은 즐거움이자, 희망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모두 정해진 것이라면 말이다... 슬프다.
그래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마지막 말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4) 순수함을 잃은 것같은 나의 삐딱함이여...
주인공 자말과 라띠카는 결국 해피엔드를 이룬다. 돈도 벌고, 사랑도 얻는다. 비록, 삼총사 중 한명인 프로토스를 잃지만, 어쨋든 둘은 발리우드식 흥겨운 군무한판을 벌인 후에, 행복한 뒷모습을 관객에게 보인다. 꼭 그렇게 해야했을까. 정답도 맞추고 사랑도 얻게 하는, 그러면서 괴로운 형은 죽음으로 몰아야하는 이같은 결말이 대니보일이 생각한 발리우드식 결말인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말에 대한 질투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같고, 인생과 퀴즈쇼 정답 사이의 잘 짜여진 각본을 바랐던 나에게 퀴즈쇼 정답을 맞출 것같지 않았던 자극적인 자말의 인생은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리볼버'로 사람을 살해한 형의 모습을 통해 '리볼버를 만든 사람이 콜트'임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결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이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할만큼 그의 인생과 정답사이의 고리가 탄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나도 안다. 이 모든게 트집이라는거 나도 안다. 어차피 무결할 수 없는 영화의 연결고리. 익스큐즈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냐. 그냥 온전히 자말과 라띠까의 행복한 사랑이야기로만 봐주기에 나는 이미 삶에 찌든 영혼인 것을...
온전히 따스한 시선만으로 바라보기엔 '살림'의 죽음과 선택이 눈에 밟히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이미 씌어진 운명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서일게다.

오스카. 발리우드의 흥겨움과 대니보일의 화려한 영상과 음악 그리고 순수한 어린 연기자들의 눈망울에 속은거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어른들에게는 해피엔드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의 구렁텅이임을 일깨워주는 지독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아내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감상기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디안 밀리어네어 만들까?"
: http://costrama.com/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