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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090204 /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서울극장(시사회) / 19:30~22:10 /


(※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영화를 보는내내 바쁜 업무로 함께 자리하지 못한 아내의 손을 잡고 싶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눈물겨운 남녀의 저릿저릿한 사랑이야기도, 역경을 딛고 일어난 고난한 인간의 성장기도 아닌...
숨을 쉬고 있는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공기같은 영화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딱 그만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1. 바람같은 인생의 추억
영화는 이젠 나이가 들어 의료기계장치에 목숨을 의지한 노모가 제법 나이가 든 딸에게 건내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뭘 보고 있니'
병원 창밖을 멍하니 지켜보던 딸은 몸을 부스스 돌리며 말한다.
'바람이요'
보이지도 않는 바람을 보고 있다니...
아마 그녀가 보고 있던 것 바람에 흔들리는 무언가였을게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여파는 분명히 눈에 보인다.
그것이 5등급짜리 허리케인이든, 있는듯없는듯 사라진 산들바람이든, 바람은 그렇게 가만히 있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에게 질곡많은 인생과 그 여정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냥 '바람'처럼 느껴졌을게다. 
스쳐가는 바람이든 온 대지와 사물을 뒤엎어버리는 강력한 허리케인이든 다 그렇게 같은 바람이었던게다.  
영화는 그렇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진다.

딸은 말을 잇는다. 자신의 지인이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속상해한다고 말한다. 엄마는 답한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딸은 언제나 엄마의 곁을 지킬 것처럼보인다. 그리고 보는 이들은 그 딸이 엄마의 임종을 꼭 지키길 그리고 엄마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길 기도한다.

엄마는 다시 알 수 없는 얘기를 시작한다. 
케토는 프랑스계 흑인여성과 결혼한 눈먼 남자로, 시계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와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1차대전이 발발하여 그의 아들은 징병되어 나간다. 얼마 뒤, 그와 그녀의 아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케토는 그렇게 또 시계를 만든다.
그가 만든 시계는 전사한 우리의 아들들이 살아돌아와 농사를 짓길 바라는 거꾸로 가는 시계이다.
시계는 거꾸로 움직이며 인생이라는 시간을 되돌려 추억을 회상하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나이먹은 신체를 갖고 태어나 나이가 젊어지는 인생을 사는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는 그렇게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추억한다.

2.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공간 '노인 요양소'.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 '벤자민 버튼'은 죽음을 앞둔 노인요양소에서 살게 된다. 녹내장과 관절염, 귀도 안들리는 채 태어난 벤자민 버튼이 죽음을 앞둔 노인들 사이에서 자랄 수 있는 건 일종의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 누구도 '벤자민 버튼'을 괴물이라 부르며 놀리는 것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으로 시작해 사랑하는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생에서의 수많은 바람을 거쳤고, 벤저민 버튼 역시 그 바람 중 소중한 하나의 바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벤저민 버튼의 삶이 평안했던 것일까.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벤자민 버튼의 고통을 스크린위에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벤자민 버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버려진 순간 조차도 그는 소리쳐 울지 못한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준 아주머니의 죽음에도, 자신을 버린 생부의 존재를 알았을 때에도, 자신을 거둬준 흑인엄마의 죽음에도 그리고 사랑하는 두 사람을 남긴 채 떠나야하는 순간에도 그의 고통은 표현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표현하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벤자민 버튼'에게 노인요양소는 평안한 자신을 감싸는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지만, 더불어 그는 하루하루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고통을 감래해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늙어가고 죽어가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그렇게 고통을 삭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남겨지는 사람 쪽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는 점을 노인요양소의 노인들을 떠나보내며 너무 빨리 깨달았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어 묻히게 되지만, 그 과정은 같다.
핏덩이로 태어나 골격이 커지고, 몸에 털이나고 근육이 생기면 자연스레 사랑과 결혼을 하고 얼굴에 짙은 주름이 늘며 살아온 인생을 소회할 자식들과 함께 그렇게 늙어 묻힌다. 그렇게 서로를 공감하고 위안하며 산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벤자민 버튼은 언제나 떠나보내야하는
남겨진 사람
이며, 고통은 계속 증가하고 그가 감래해야하는 고통은 짐이 되어 그를 짓누른다. 남겨지는 것에 익숙해져야하며, 떠나보냄을 준비하는 것이 삶의 연속이다. 그렇게 벤저민 버튼이 덤덤하게 일상을 맞이하는 태도는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함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괴로움을 목도하는 순간으로 여겨지기까지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젊은 외양을 갖게 되는 벤자민 버튼의 삶은 점점 즐거워져야하는데 그에게 젊어지는 것이 즐거움만은 아니다. 그의 빠진 머리카락이 채워질 수록, 몸에 근육이 늘어날 수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감은 점점 멀어져가고,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공감을 얻을 연결고리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는 새로운 세상으로 자신의 처음을 모르는,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을 디딤으로서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듯하다. 비록 그속에서도 벤저민 버튼은 어쩔 수 없이 남겨지는 사람일지라도 적어도 벤자민 버튼은 '노인요양소'에서 자기 발로 걸어 나와, 세상을 마주한 이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당연스레 받아들여지던 '죽음'이라는 인생을 굴레에서 조금 벗어나 자신의 인생과 행복에 대해 받아들이게 되고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찾게된다.


3. 사랑하며, 위안하며 그렇게 또 고통받는 삶의 무한반복(∞)
- 벤자민 버튼이 노인요양소를 나가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안식처는 허름한 예인선이다. 예인선의 선장 마이크는 러시아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난데없는 벌새이야기를 시작한다. 벌새는 10초라도 날개짓을 쉬면 죽게 된다. 1분에 수만번의 날개짓을 하는 벌새의 날개를 잘 보면 8자를 그리는데, 8자를 옆으로 하면 무한대, ∞를 그리게 된다는 이야기. 결국 인간의 삶과 죽음은 끊을 수 없는 순환고리와 같은 것이며, 비록 벤자민 버튼의 노인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인생을 살다가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될거라는 암시이다.

벤자민은 사랑을 통해 자신을 구원할 방법을 찾는다. 죽어가는 노인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생기있는 공기를 주변에 몰고다니는 소녀 데이지, 눈부신 그녀를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이 '벤자민 버튼'의 다른 인생을 다르지 않게 사는 해답이라 여긴다.
벤자민 버튼은 자신이 처음 만난 강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그녀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요양소를 떠나면서도 자신이 어디에 가거나 꼭 엽서를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까지도 엽서로 보낸다. 그는 온전히 마음을 보여주고 자신의 고통까지 함께 하는 방법으로 사랑해본 적 없는 그는 결국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며 자신의 고난한 삶을 다른이에 대한 헌신으로 변화시켜나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결국 한 여인의 목소리를 통해 추억으로 소회되는 벤저민 버튼의 이야기를 통해 남겨진 자들에게 고통을 잊는 방법을 말해준다. 항상 벤저민 버튼은 다른사람의 평안함을 지켜보며 남겨진자의 고통을 맞이하는 쪽이었지만 그의 다이어리가 다른이의 목소리를 통해 읽어짐으로써 그는 추억되고, 결국에 자신은 사랑받았고, 사랑했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다간 한 인생의 하나가 된다.


4.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일어나 눈을 뜨며 사랑하는 이의 촉촉한 머리결을 마주한다. 매일마다 나도 모르는 주름이 늘어갈것이고, 또 언젠간 백발이 성성해질 것이라는 것도 (부정하고 싶지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나이들어감을 곁에서 함께할 수 있는것만으로 나는 너무 행복하다.
TV에서 보면 먼저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를 혼자두고 먼저 떠난 인간 뭐가 좋다고, 다시 태어난다고 그런 영감탱이랑 또 결혼을 해. 나쁜 놈'
남겨진 자는 그렇게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나이들어왔으면서도 그렇게 나이를 함께 먹어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가슴을 저민다. 아마 그래서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을 다시 찾은 것일게다..외롭고 함께 자신의 나이듦을 바라봐줄 누군가가 했기 때문이다.

벤자민 버튼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하는 '함께 늙어가는 것'을 하지 못했다. 주름진 데이지의 눈가를 보며 여전히 사랑하고 아름다운 눈빛을 보이지만, 20대의 육체를 갖고 50대의 데이지와 사랑을 나눈 후, 속옷 사이로 늘어진 세월의 흔적을 바라보는 벤자민 버튼의 시선은 슬프기 그지없다. 그는 그렇게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수이 상상하기 힘들다.

나는 오늘도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또 사랑한다고 말한다.
함께 나이들어가며, 나의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봐줘서, 그리고 눈부신 현재와 더욱 눈부실 그녀의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걸어가줘서...


5. 결국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
- 다이어리를 읽던 딸은 몇번이고 자리를 비운다.
엄마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자신이 몰입한 이야기에 전념한다. 엄마의 숨결이 거칠어지면 자연스레 자리를 비우고 간호사를 찾는다. 엄마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허리케인이 세지고 있다. 하지만 딸은 굳건히 병원에서 엄마를 지킨다. 그때 사이렌이 울린다. 딸은 엄마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 난 건지 잠깐 나갔다 오겠노라고... 잠깐...

결국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끝난다.

죽음을 준비한 엄마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엄마에게 곁을 지킬거라고, 안지키면 평생후회할 거라고 말하는 것인가. 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삶은 나를 위해 산다. 고통 역시 내가 겪는 것이다. 남겨진 자의 고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의 사랑은 아름답고 그녀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는 먼저 보내야하겠지.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당연한 공기같은 명제를 새삼스레, 하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로 얘기하는 인생이다.

덧 : 브래드 피트의 젊은 날을 목도하는 건 정말 행복하다. 그가 이렇게 눈부셨었구나 싶다.

덧 : 오랜만에 서울극장을 찾았다.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해야하나... 종로의 극장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특별함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