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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더 레슬러 : 살아있는 자를 위한 Requiem

090308 / 더 레슬러(The Wrestler) / 야탑 CGV / 14:05~16:00 / 지은


할리우드에서 스타의 몰락하는 과정을 목도하는 건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도, 홀로 집에 있던 맥컬리 컬킨도,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도...
보석처럼 빛이 발하던 미키루크가 이렇게 한순간에 빛을 잃고 점멸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게다.

사실, 그의 존재가 나에게 그리 강렬하지 않아서 그렇지, 미키 루크의 얼굴을 본 순간 정말 많이 놀랐다.
깎은 듯 또렷했던 턱선과 콧날은 사라져버렸고, 반항기어린 눈매는 초점을 잃고 허공을 부유하는 검은 동자로 변해있었다.
얇고 촉촉했던 입술은 두툼하고 울퉁불퉁한 실리콘으로 변하였으며,탐스러운 밤색의 머리카락은 이제 없다.

그러게 사그라지고, 바스라져버릴 것만 같던, 이미 바닥 끝까지 추락해서 사라져버렸던 '미키 루크'가 '더 레슬러, 랜디 램'이되어 돌아왔다.


1) 살아있는 미키루크를 위한 Requiem
-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미키루크의 질곡많은 인생이 영화 '더 레슬러' 속 주인공 '랜디 램'의 인생과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걸로 더 유명해졌다.
잘나가던 인생에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망가져버린 현재를 살아가는 부분까지 '미키 루크'는 '랜디 램'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여질 정도다.

난 미키루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잘 생겼던 그저그런 배우로 기억할 뿐... 어린 시절 영화 '9 1/2week'가 나에게 준 여파란 없다. 다만 킴 베이싱어와 미키루크의 얼굴, 얼음과 체리를 이용한 러브신은 잔상으로 남아있지만...
그렇게 잊혀지던 미키루크는 할리우드 가십란에서나 간혹 만날 수 있는 그렇게 망가지고 잊혀져가던 얼굴일 따름이었다.

그러던 미키루크가 자기의 존재감을 알렸던 작품은 그래픽 노블인 <씬시티>이다. 실제 만화<씬시티>에서 튀어나온 것같은 울퉁불퉁한 얼굴에 제대로된 발음을 할 수도 없었던 마브를 연기하며, 미키루크는 연기력을 인정받고, 성형중독으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을 스크린 위로 드러내며 관객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악의 도시를 전전하는 마비는 <씬시티> 속에서도 유독 강한 외향을 지녔지만, 그가 갖고 있는 순정과 속내는 여리기 그지없다. 단지 하룻밤을 함께 했을 뿐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거는... 하지만 자신의 위치는 너무도 잘 아는...

미키루크는 마치, 현실 속 자신이 그러하다는 듯이 그렇게, 팬들에게 다가왔고,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각인시키는 작품으로 '더 레슬러'에 출연하게 된다.
'더 레슬러'는 살아있는 미키 루크의 제대로된 복귀작이다. 그는 굳이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캐릭터인냥 하지 않아도 되고, 그 스스로를 연기하기만 하면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잘 하려 노력해도 결국은 그렇게 밖에 안되는... 버릇을 남 줄 수 없는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

미키루크는 그렇게 스스로를 버린다. 알콜에 쩔었고, 오만함에 찌들었으며, 성형에 중독되어 이제는 지우고 싶을 그 옛날의 자신을 버린다. 그러면서 다시 새로운 자신과 자신의 연기를 쌓아나아간다.

미키루크에게 '더 레슬러'는 그동안의 미키루크와의 작별을 고하는 '진혼곡(Requiem)'이자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서곡(Prelude)'가 된다.

2) 숨쉴 수 있는 지옥 / 숨쉴 수 없는 천국
- '진흙탕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있다.  영화 '더 레슬러'를 보고도 우리네 선조의 이 옛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실험실의 쥐새끼같은 삶을 비루하게 연명하는 것보다 때로는 자신의 모든 걸 한 번에 불태워버리는 삶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인생의 굴레가 덧없음을 깨닫고, 훌훌 떠날 수 있는 랜디 램의 선택은 눈물겹지만 불쌍하지 않다. 죽음을 향해 내딛는 그의 발걸음이 오히려 경쾌해보이고 그의 처진 어깨위의 무거운 짐이 한꺼풀 덜어진 느낌을 짙게 자아낸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 얻고 싶고 의지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그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멋진 미소와 작별의 말을 고하고 자신이 숨쉴 수 있는 지옥으로 향한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만큼 그 지옥에는 향기가 있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며, 오로지 그 지옥에서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역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부러질듯한 사각의 링위에 올라 마지막 램 잼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랜지 램'에게 뜨거운 눈물과 박수를 보낸다.




3) 80년대에 바침
- 80년대 WWF의 헐크 호건을 비롯 얼티밋 워리어, 잭 더 스네이크, 달러맨, 자이언트, 어스퀘이크 등의 수퍼스타를 거느렸던 80년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포츠의 본좌였던 프로레슬링은 승부조작의혹과 같은 좋은 않은 루머들과 함께 대중들의 눈과 마음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더 레슬러' 속 주인공 랜디 램은 80년대 최고의 프로레슬러다. 이젠 쇠락한 과거의 영관만을 간직한 남루한 현재의 영웅에게, 그가 영웅임을 증명해주는 건, 고작 닌텐도 Wi와 DS가 범람하는 시대에 낡아빠진 닌텐도 게임 팩속 캐릭터에서이다.
이젠 향수를 자극해서 잠깐의 눈요기가 될뿐.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흐름에 밀려, 낡은 체육관에서 휠체어신세가 된 노인내들과 함께, 냄새풀풀 풍기며 자신의 옛영광을 기억해주는 몇몇 인간들에게 의해 소구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래. 그도 알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소구되는 소모품같은 비루한 인생만이 자신 앞에 남아있을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결국 그의 선택은 비루한 인생을 그저그런 인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발로 수퍼스타로서의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더 레슬러'의 '랜디 램'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캐시디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에서 이렇게 불평한다.
'80년대 음악은 신나고 즐거웠는데, 커트 코베인이 모든 걸 우울하게 망쳐놨어'
영화는 90년대 우울한 얼터너티브와 그런지가 아닌 AC/DC와 G N'R의 시원스러운 LA메탈에 몸을 의탁하고, 이젠 채 잊혀진 것같았던 음악들을 꺼내, 80년대 영웅을 위한 음악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렇게 간절히 '랜디 램'이 바라며 선택한 음악 'Guns &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을 흘러나오고 그 음악을 들으며 링 위에 올라서는 랜디 램은 과거의 영웅에서 현재의 수퍼스타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영화 '더 레슬러'는 그시대에 우리가 영원히 우상으로 여길것만 같았던 80년대 영웅들을 위한 노골적인 헌사이자, 그들에게 등돌린 우리를 돌려세우는 힘을 가진 '80년대에 바치는' 영화이다.


오늘도 그렇게, 가슴을 저미는 진정한 영화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