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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적벽대전2-최후의결전 : <고우영의 삼국지>에 <적벽대전2> 투영하기

090124 / 적벽대전2:최후의 결전 / 문래 CGV / 12:10~14:41 / 지은, 처가식구들

※ 본 포스팅에 등장한 <고우영 삼국지>에 대한 이미지들은 필자의 소장만화책에서 디카로 촬영해 올린 것들입니다. 저작권상 문제가 되는 부분 있으면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삼국지만 읽어도 세상돌아가는 것에 대한 안목,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처세 등에 대한 내용들을 알 수 있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아우르는 역사서로도 인식되던 삼국지는 (적어도 내가 자랄 때에는)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사서 읽히는 교과서 이외의 몇 안되는 책이 되었고, 모든 학생, 직장인들의 필독서였다. 나와 우리 어머니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비석의 삼국지, 이문열의 삼국지 그리고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까지... 다양한 사관으로 해석된 삼국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중,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유려한 문체의 이문열 삼국지도, 힘차고 탄탄한 정사(정사를 읽는 느낌의 정비석 삼국지도 아닌, 해학과 풍자로 가벼워보이게, 하지만 본질은 세태를 꼬집는 예리함인 고우영의 삼국지였다.

1. (가볍게) <고우영의 삼국지>와 <적벽대전> 출연진 외모 비교

주유 & 제갈량

<적벽대전 2> 주유는 더 부드럽게 / 제갈량은 조금 더 남성다운 기운이 드는, 하지만 부드러운 남성으로...
<고우영의 삼국지> 주유는 강인하고 / 제갈량은 계집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여성스럽게

손권 여동생 

나중에, 유비의 부인이 되는 손권여동생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적벽대전2>의 조미가 더 어울리는 느낌. 강인하면서 밝은 느낌이 마음에 든다.

손권

전체적으로 비슷한 강인한 남자의 느낌. 단, 하관이 더 강조된 <고우영의 삼국지> 속 손권이 더 패기있어 보인다.

조조

<적벽대전2>의 조조는 조금 더 여유로워보이는 얼굴을 가졌다. 간웅으로서의 면모보다는 호방한 외향이 매력도를 높인다.

소교

<적벽대전2>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소교는 <고우영의 삼국지>에서는 주요 소재로는 사용되나 얼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적벽대전 2>의 소교가 예쁘다.

유비/관우/장비/조운
<적벽대전 2>의 유비/관우/장비/조운은 너무 진지하다.
<고우영의 삼국지>속 유비는 멍청해보이고, 관우와 조운은 충직하게, 장비는 무식해보이게 그렸다.

유비중심사관에서 벗어난 <고우영의 삼국지>는 기존 삼국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여담이지만, 그러고보면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 중심으로 기록되기 마련인데, 중국의 삼국시대를 통일하는데 공헌한 조조보다 작은 땅덩이의 왕이었던 유비가 중심이된 삼국지가 많은 것은 조금 의외의 상황이기도 한듯하다.)

2.왜 하필, <고우영의 삼국지> Vs.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인가
- '쪼다 유비'로 인물 소개를 시작하는 <고우영의 삼국지>는 유비 중심으로 풀어진 한왕조 이후 중국의 역사에 대해, 파격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위-촉-오 세나라중, 한왕실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인군자로 묘사되는 유비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의 삼국지와는 달리 <고우영의 삼국지>에서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격정의 시대에서 부유하는 덜 떨어진 인물로 묘사된다. 귀가 어깨까지 내려오며, 눈이 큰 아이로 묘사되는 외모까지 외계인과 견주어질 정도로 바보로 그려낸다. 물론, 지극히 희화화하기 위함이 명확하지만, 인물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기도 하다.
간웅으로, 유비의 '적'으로만 인식되던 조조에 대해서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인정이 빠르고, 고집스러운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가졌던, 때로는 진심으로 원하는 장수(관우)를 얻기 위해서는 지극히 순애보적인 애정을 보였던 인물로, 유비와 제갈량에 삼고초료에 비길만한 사람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봤던 <고우영의 삼국지>의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간의 대립구도이다. <고우영의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관우와 제갈량'의 라이벌 구도로, 꽤나 유명하다. 관우의 기를 꺾이 위한 제갈량의 술책과 그런 제갈량의 의중을 읽어내는 몇안되는 인물로 묘사되는 관우. 같은 배를 타고 있더라도 자기 사람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과 알력 다툼이 그려진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구도가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주유'와 '제갈량'간의 관계이다. 동맹이면서도 라이벌이었던 주유와 제갈량은 적벽대전을 위나라와 촉-오 연합군의 싸움이 아닌 제갈량의 주유의 싸움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불꽃튀는 지략 대결을 펼친다. <고우영의 삼국지>는 이런 면에서'유비'를 최소화하고 '주유'에 포커싱한 <적벽대전2>와 어느정도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할 수 있다.
물론, 적어도 '이문열'이나 '정비석'의 삼국지 역시 주유와 제갈량을 다루지만 결국 주유는 중심인물은 아닌터, '주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적벽대전2>는 <고우영의 삼국지>와 비교해보면 그 흥미가 곱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3. 주유와 제갈량, 숙명의 라이벌에서 단순한 전장의 동맹으로...
- <적벽대전 2>에서 그려지는 주유와 제갈량의 관계는 단순한 동맹을 넘어서지 않는다. 서로의 재능을 흠모하고, 질투하며 날카로운 자존심대결을 펼치는 <고우영의 삼국지>속 주유와 제갈량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함께 거문고를 타며 음악으로 서로 교감하는 장면은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홍콩느와르의 거장 '오우삼'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첩혈쌍웅'에서의 이수현과 주윤발을 떠올려보라) 솔직히 서로이 재능을 질투하며 마찰을 일으키는 주유와 제갈량과의 관계가 더 큰 긴장감을 가져올만하다.

<고우영의 삼국지>에서 주유와 제갈량의 만남에서부터 그 기싸움이 만만찮다. 조조의 관심을 오나라로 이동시키기 위해 손권과의 동맹을 제안하는 제갈량의 수를 알아본 주유는 영화 <적벽대전2>에서와는 다르게 제갈량의 동맹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제갈량은 순순히 물러나는 척하며, 조조의 '동작대'이야기를 꺼낸다. 그 내용은 즉, 색을 밝히는 조조는 동작대를 만들어 그 속에 100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살고 싶다고 하는데 현재 98명의 여자가 모였고, 오나라의 두개의 다리(橋)만 얻으면 그 동작대가 완성된다. 오나라의 두 미녀, 橋(다리 교)씨 자매를 조조에게 바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주유는 펄쩍 뛰며 당장 촉-오 동맹을 맺고 조조와의 항전을 준비한다. 바로 동작대를 완성할 두 개의 다리(橋) 중 하나가 주유의 아내인 '소교'를 뜻하였던 것. 제갈량은 이렇듯 상대방의 모든 조건까지 다 파악하고 이를 심리적으로 이용하는 인물이었던게다. 그런 제갈량이 주유는 싫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영화 <적벽대전> 속에서는 조조가 '소교'에게 집착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소교'를 위해 오나라와의 싸움을 시작한 것으로 단정짓는다. 삼국지를 읽지 못한 미국인들을 위해 복잡한 삼국지적 설정은 거세하고 오우삼식의 심플한 홍콩느와르식 갈등구조를 대입한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쉽게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얕고 공감되지 않는 상황 설정으로 인해 전체적 영화의 완성도가 적어 보이는 단점을 갖게 된다. 특히나 갑자기 주유의 허락없이 조조 진영으로 뛰어드는 소교의 모습은 설득력 제로의 황당한 장면. 솔직히 실소가 나올만큼 어이없는 장면이다.




그 근본에는 바로 '제갈량'과 '주유'를 단순 동맹관계로만 상정한 영화 속에서는 '조조'와의 갈등구조가 없다면 너무 밋밋한 흐름으로 '적벽대전'의 화공을 보여주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나름 극적인 반전을 준 것이 바로 '소교'의 행동인게다.
주유가 조금만 더 제갈량을 질투했더라면... 그의 간교에 놀아난 자신의 아둔함으로 괴로워했다면, 영화는 훨씬 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그럴 기회는 많았다. 10만개의 화살을 손하나 까딱안하고 만들어낸 제갈량의 '얍삽함'이나 (영화속에서는 그려지지 않았지만) 화공에 적합한 풍향이 바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음에도 마치 엄청난 도술을 쓴 것처럼 생색내는 제갈량의 쇼맨십을 보고 분노하는 주유. 생각만해도 짜릿함이 느껴지는 갈등 구조이고, 이같은 갈등이 <적벽대전>에 더 큰 생기를 불어넣었을 거라고 기대하면 오산일까.

4. 하지만 오우삼스러운만은 즐거운...
- 영화를 보면서 즐거웠던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화려한 적벽대전 전투신도 아닌 오우삼 스러운 장면을 만나는 즐거움이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솔직히, 미니어처와 CG로 이뤄진 화염신은 허술해보인다.
오우삼 감독이 '적벽대전'을 영화하기로 한 이유도 바로 이 '화염신'때문이었을텐데, 그래서 삼국지의 큰 축인 유비,관우,장비도 포기하면서 만든 '적벽대전'인데, 기대보다 그 전투신은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기대하고 쌍권총대신 쌍칼을 휘두르는 감녕과 조운의 비상을 바라보는 건 1980년대 후반, 1990년 초반을 아련한 향수를 떠오르게 한다. 페르소나같은 주윤발형님은 없지만, '영웅본색'에서 드러냈던 '티나는' 폼잡음이 멋스럽다. 방패로 진형을 흐트러뜨리고, 그방패들을 발판삼아 근두운을 타는 손오공처럼 활주하는 관우의 모습은 오우삼식 멋진 액션을 떠올린다. 세련된 전장의 영웅들을 조명하기 보단 감녕과 같은 우직한 사나이다움을 갖추고 있는 인물을 더욱 집중해서 그리는 오우삼의 시선. 최고의 명장 조운도 돌쇠처럼 우직한 인물로 만드는 오우삼스러움이 드러나는 설정들. 결국은 1990년대 이쑤시개와 바바리코트, 선글라스, 주윤발을 만들어낸 '오우삼'이기 때문에... 용서가 되는 걸지도 모른다.

<적벽대전 2>를 통해, 새삼 <고우영의 삼국지>이 얼마나 좋은 관점의 삼국지인이 깨닫게 된 점도 즐겁다.
추억하고 휘발되는 향수가 아닌, 끊임없이 기억을 재생산하고 현재에 투영시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존재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삼국지는 그렇게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로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게다. 그러기에 삼국지에 더 가치있는 소설이자 영화적 소재인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