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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7급공무원 & 과속스캔들 : 무한긍정의 힘 충만한 이란성 쌍둥이같은 영화들

090424 / 7급공무원 / 야탑 CGV / 21:10~23:13 / 지은 

<7급공무원>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역부족으로 보이는 촌스러운 제목을 가진, 티켓파워가 검증되지 않은 강지환과 김하늘을 내세운 그저 그런 영화처럼 느껴졌다. <과속스캔들>은 차태현이라는 항상 비슷한 연기를 하는 배우에, 역시 촌스러운 제목을 가진 뻔한 상업영화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속스캔들>은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2009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으로 한국영화사상 역대 흥행 순위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고, 하반기에는 TV 시리즈로 리메이크될 만큼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그리고 여기 2009년 4월 개봉한 영화 <7급공무원>은 개봉 첫주 8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9년 제 2의 <과속스캔들>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7급 공무원>을 보고나니, 전혀 연관성없어 보이던 두 영화 <7급공무원>과 <과속스캔들>에 대한 비슷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1. 윤제균을 처음 만났을 때의 뻔뻔한 느낌
- '영화를 보는 동안 5분에 한번은 관객의 웃음과 울음중 중 하나는 확실하게 책임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색즉시공>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였다. 정확하게 이렇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결국 자기의 목적은 영화를 보는 관객을 자신의 의도대로 웃기고 울릴 수 있다는 자신감넘치는 초짜 감독의 인터뷰이자, 어쨋든 영화의 중요한 기능은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라는 감독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인터뷰였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 이런 윤재균감독의 인터뷰는 쉽게 코웃음쳐지는 인터뷰였다. 초짜 감독이 거만하게 관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은 자만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는 어떤 영화도 편식을 하진 않는 편은 아니지만, '소위' 대중영화, 그러니까 순간의 유희를 주는 영화에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잰 채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유려한 영상을 갖고 있거나, 잘 짜여진 영화를 마주하는 순간의 희열이 짜릿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비웃음은 감독이 앞서서 대중영화를 표방한 <색즉시공>을 보기 시작한 후, 5분도 채 되지 않아 진짜 웃음으로 바뀌었다. 영화 <색즉시공>을 보면서 나는 관객으로서의 '착한' 의무를 다하며, 울고 웃으며, 결국은 눈물콧물 범벅된 채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맞았었다. 습습한 동숭아트홀에서의 아련한 기억이다. 

묘한 반골기질이 있어서 사람들이 뻔히 재밌다고 하는 영화들, 너무 많은 관객이 든 영화들을 만나게 되면 다소 비뚤어지게  '그래 얼마나 웃기나 보자'라는 시선으로 보게되는 것도 있는 것같다. 영화 <과속스캔들>을 보러 갈 때도 그랬고, <7급공무원>을 보러 갈 때도 그랬지만... 결국 영화를 보기시작한 후 채 5분도 되지 못하고 완전 무장해제당해서 영화를 보게 됐다.
초짜감독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뻔뻔한 패기라고 해야하나. <과속스캔들>과 <7급공무원>은 그런 뻔뻔함이 <색즉시공>의 윤제균 감독의 만났을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2.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단순명료한 스토리


- <과속스캔들>은 "어린 시절, 단 한번의 불장난으로 30대 중반에 할아버지가 된 아이돌의 가족의 재발견"으로, 
  <7급공무원>은 "국정원 비밀 스파이 커플의 좌출우동 재결합 대소동"으로 간단하게 귀결되는 명확한 스토리를 가졌다.

두 영화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한 눈팔지 않고, '가족의 소중함'과 '오해로 헤어진 커플의 재결합'이라는 목적을 향해 소신있는 스토리 전개를 펼친다. 그러다보니 주변인물들은 마치 슬램덩크 속 강백호의 왼손처럼 '단지 거들뿐'이다.

풍성한 영화적 인물들의 향연도, 깜짝 놀랄만한 까메오도, 그렇다고 스토리상의 기가 막힌 반전도 없지만, 영화는 요소요소에서 재미적인 에피소드와 장치들로 관객을 극중에 몰입시키는데 성공한다.

<과속스캔들>은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세명만 기억날 뿐이고 특히, <7급공무원> 속에서 눈에 띄는 까메오는 김하늘과 강지환 사이에서 바라보는 경찰 아저씨뿐(그것도 아주 흐릿하게...), 심지어는 그 둘의 타깃으로 나오는 강신일이나 외국배우의 역할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 둘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강지환의 상사로 나오는 과장역시 훌륭한 캐릭터이지만 그는 개연성있는 캐릭터가 아닌 강지환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요소로 배치된 느낌이다. 이렇듯 두 변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다소 영화가 지루해질 찰라, 이같은 지루함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 덕분이다.

3. 티켓파워 부족의 배우를 선택한 소신있는 캐스팅이 가져온 디테일함이 살아있는 리얼리티

- 드라마 '온에어'의 오승아로 대박을 일군 '김하늘'과 영화 '영화는 영화다'의 예기치 못한 성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강지환'.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후 한동안 영화에서 죽쑨 '김하늘'이며,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드라마로 고만고만한 연기자로 머물러있던 '강지환' 아닌가.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내가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 두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내가 돈주고 극장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7급공무원>의 캐스팅은 그만큼 의외였고, 기대치 못한 두 배우, 특히 강지환의 디테일한 연기를 만나게 해주는 즐거움을 준다.

마마보이 신참 국정원 요원이 PT를 하기 위해 자기암시를 거는 손 쥐었다 폈다하는 장면이나, PT도중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그럴싸하게 연기해내는 '강지환'을 보면서 이보다 더 괜찮은 캐스팅이 없다싶다. 다소 과장된 마마보이 설정임에도 그가 사랑스럽고, 발랄함을 살짝 눌러준 목소리 연기까지 펼치는 강지환은 단연 <7급공무원>의 쾌거랄 수 있다. 

김하늘 역시 '동갑내기 과외하기'류의 발랄함과 당참을 겸비한 독립적 여성을 연기하며, 그의 존재감을 알리긴 하지만, 강지환의 열연에 다소 빛이 바랜 느낌. 그래도 역시  수지 역할을 할만한 다른 배우를 찾는 것도 쉽지는 않다. 김하늘만큼 뻔뻔하게, 그러면서도 똑부러진 느낌으로, 때로는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와 함께 애교를 부리며, 상대 배우의 연기에 적절한 리액션을 보이는 여배우는 없어보인다.
전도연은 오버스러울 것같고, 손예진은 너무 부담스럽고, 공효진에게는 애교가 부족할 것같다. 김민희는 똑부러지지 않고, 김태희, 한예슬은 예쁜척하고만 있을 것 같다.

<과속스캔들>속 차태현도 그랬다. <복면달호>로 관객 200만을 돌파했음에도 항상 똑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에게 특별함을 기대하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과속스캔들>이라는 요상한 제목을 가진 영화에 '차태현'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는 이미 관심사밖의 영화로 치부되었을 정도니까.
<과속스캔들> 속 차태현의 연기는 김하늘의 그것만큼 특별한 맛은 없지만,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하고 있다. 눈에 띄는 화려함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디테일을 살린 연기를 통해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다시 한번 슬램덩크 식으로 말하면 '화려한 도미를 빛내주는 무채'같은 연기가 영화 전체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 정말 거지같이 촌스러운 제목 하지만,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쉬운 제목
- 하지만 정말 제목은 너무 촌스럽다.
관객의 보고싶었던 마음까지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마력(!)이 있는 텁텁한 제목이다.

<과속스캔들>은 과속이라는 소재는 잘 잡아냈지만 스캔들이라는 제목은 큰 의미가 없다. 가족의 화합이라는 영화 전체의 목적에 부합하는 제목은 <과속삼대>라는 해당 영화 시나리오 단계의 제목이지만, 그 역시 관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제목은 아니다.

<7급공무원>도 그렇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게 하는 hooking을 노린 느낌인데, 요즘처럼 공무원에 목숨거는 세태를 비꼬는 듯한 블랙코미디로 오해받기 딱 좋은 제목이기도 하고, 이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국정원 요원'이 '7급' 공무원이라는 사실 뿐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김PD도 특별한 제목이 떠오르지는 않지만서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결과론적으로는 그런 무덤덤한 제목을 갖고도 훌륭한 흥행을 했거나, 혹은 훌륭한 흥행을 하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제목의 덕을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두 영화 모두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단어들로 너무 어려운 의미를 함의하지 않은 솔직하고 스트레이트한 제목으로 관객의 혼선없이 솔직함을 어필한 영화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제목이기는 하다.

제목이 달라졌을 때의 흥행이 어떻게 될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과속스캔들>이나 <7급공무원>이나 두 영화 모두 영화의 힘으로 일군 자신들의 성과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적어도 영화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는 착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글을 쓰면서 들었다.


5. 마치며...
- 모처럼 즐겁게 영화를 보았다. 글을 쓰기 위해, 다소 문학적인 어투로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듯한 의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어렵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다소간있는 나에게 <7급공무원>과 <과속스캔들>은 참 기분좋은 refresh 수단이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영화 자체에서 오기도 하지만, 관객과 소통하며 퍼지는 반향을 통해 오는 가치는 더 크다 .

<7급공무원>과 <과속스캔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축 늘어진 어깨를 가진 현대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기분좋은 기운을 가진 친구를 만나는 것같은 영화다.

그래서... 난 니가 참 좋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

오랜만에 영화로 BEST에 올랐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