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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인사동 스캔들 :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꿈꿨으나, 현실은...

090501 / 인사동 스캔들 / 메가박스 삼성 / 17:50~19:30

※ 스포일러 포함되어있습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영화 '미인도'가 조선시대 미술과 화공들의 '복원된' 이야기였다면,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문서상에서만 살아있던' 400년된 미술품을 '복원하는' 이야기이다.



지금껏 접해본 적 없는 고미술품 복원이라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재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400년이나 된, 이젠 그 퀴퀴한 종이냄새, 먹의 색상마저도 다 빠져,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어렵지만 그 필치만큼은 생생히 살아숨쉬는, 잘못건드리면 바스라질 것같은 마른 나뭇잎같은 한지 속 비경을 온전히 살려내는 작업이라니... 세초다, 상박이다, 회음수다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가적 냄새 풀풀 풍기니 그 호기심은 절정에 달한다.
여기에 '무릎팍도사'이후 더 호감이 된 반듯한 '김래원'과  '타짜'의 김혜수를 연상시키는 팜므파탈적 매력을 한껏 드러낼 것같은 짙은 아이라인만큼 카리스마 강한 느낌을 가진 '엄정화'가 벌이는 고미술품을 둘러싼 음모와 속고 속이는 관계적 치밀성을 예고하는 예고편에 혹하지 않을 관객이 얼마나 됐을까.
영화<인사동 스캔들>은 최동훈 감독의 두 편의 수작 '범죄의 재구성'의 치밀한 구성과 '타짜'의 쫀쫀한 캐릭터를 함께 맛볼 수 있을 것같은 기대감 가득한 작품이었다.

1. 평면적 캐릭터들의 싱거운 일합승부
- 무협지 식으로 말하자면, 진짜 내공이 센 강호의 고수들끼리의 만남은 의외로 일합승부로 마무리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일합을 위한 기싸움과 보이지 않는 심리전 등, 다양한 밑밥들이 깔리기 마련이다.

잘 만든 미스터리 장르는 마치 강호의 고수들의 일합승부와 같아서, 그 치밀한 승부의 열쇠는 '얼마나 캐릭터에 많은 공을 들여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가''그 캐릭터 사이에 양파껍질처럼 켜켜히 쌓아놓은 치밀한 관계를 만드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인사동 스캔들> 속 캐릭터들은 각각의 개성을 가질 수 있는 훌륭한 배경을 갖고 있음에도, 단선적이고 납득하기 힘든 캐릭터로 일관한다.


엄정화가 연기한 미술업계의 큰손 '배태진'은 최고의 미술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장인의 손 따위(!)는 우습게 여기는 광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의 일부인 꼬리를 잘라내고 도망치는 도마뱀과 같은 무서운 결단력, 그리고 자신을 포장할 줄 아는 명민함과 매사에 만전을 기하는 치밀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단 한 가지, 자신이 파탄낸 이강준을 아무런 의심없이, 순진하게 믿는 아둔함 가졌다.
덕분에, 영화는 이강준과 배태진이라는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야하는 두 대립각 중 한 각을 잃고 비틀거리게 된다.

상식적으로 자기가 인생 막장으로 몰았고, 자기 품으로 껴안은 이강준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대하는 배태진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동일인물로 비춰지지 않는다. 자신의 주변, 그것도 자신이 이강준을 데려온 날 이후부터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단 한번도 이강준을 용의선상으로 올리지 않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꼭 사건들의 범인으로 의심해서가 아니라, 이강준이 제대로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지, CCTV로 감시한다거나, 그의 행방가 행적에 대해 1%도 의심하지 않는 듯한 배태진이라는 캐릭터가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은 <인사동 스캔들>은 배태진과 이강준의 속고 속이는 치밀한 싸움이 관전포인트인데, 손바닥을 마주쳐 경쾌한 파열음을 만들어내기엔 배태진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순진했다.


이강준이라는 캐릭터는 배태진보다는 낫기는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 여유로운 모습만 보이도록 연기를 펼친 김래원 덕분에 이강준의 과거로 인한 현재의 복수심과 치밀함이 느껴지지 않아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게다가 그가 자신있게 내미는 히든카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소회와 처녀 복원작을 잃은 괴로움과 분노'는 표출되지 않는다. 아무리 이 모든 시나리오가 자신의 계획하에 진행되었다하더라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하며, 단 한번도 긴장하지 않는 이강준이라는 캐릭터 역시 몰입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2. (빛나는 몇몇 조연을 빼고는...) 설상가능, 배우들의 성근 연기력
- 이렇게 말하면, 억울해할만한 연기자분들이 몇분 계시겠지만, 죽은 아들 **만지는 심정으로 그 연기력에 대한 얘기도 한번 해보자.
 


주연은 아니었지만 가장 눈에 거슬리는 연기를 펼친 건 문화재보호팀 경찰을 연기는 홍수현.
정말 오랜만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를 봤다. 강력계형사처럼 보이기 위해 설정하고 거친 욕설과 행동으로 이강준과 배태진, 권마담을 몰아 세우지만, 안쓰럽기만 하다. 극중에서 홍수현을 계속해서 말리던 김태옥의 연기는 그런 홍수현의 오버 연기를 막는 듯한 인상이었다랄까. 계속 권마담에게 들이댈 때에는 '쟤는 애미,애비도 없냐'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어설프고 경우없는 연기만을 연발. 전체적으로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권마담 역의 임하룡도 마찬가지. 출연하는 영화마다 나름의 연기를 해줬다 생각하지만서도 그의 연기력에 돋보인 적은 없어보인다. 연륜있고 능글맞으면서도 비굴한, 하지만 결국에는 결정적 한방을 갖고 있는 권마담의 뻔뻔함을 조금 더 그 나름의 연기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목소리가 참 마음에 들어서, 복원 방식을 설명하는 내레이션 신은 좋았다는...

무엇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가장 큰 문제는 김래원의 표정변화없는 여유로운 연기, 엄정화의 폭발하기만하고 굴곡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태진, 이강준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버렸다. 개인적으로 김래원의 연기는 약간 쑥스럽고 어색함과 풋풋함이 느껴지는 영화 '해바라기'에서 같은 연기가, 엄정화의 연기는 '싱글즈'나 '결혼은 미친짓이다'처럼 뻔뻔하고 거침없이 솔직한 캐릭터 연기가 적역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씁쓸한 기회가 되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인상적인 캐릭터 몰입도를 갖는 고창석의 '혀딸븐' 호진사 사장 연기와 귀여움이 느껴지는 마동석의 연기가 아쉽게 느껴졌다.

3. 영화 전체의 만듦새를 바꾸기엔 이미 늦어버린 회음수 같은 히든카드
 
- 어설픈 연기력과 힘을 잃은 캐릭터를 데리고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숨가쁜 편집으로 막바지로 힘겹게 달리고 있던 <인사동 스캔들>은 400년된 고미술품 '벽안도'가 이강준의 계략이었다는 초강력한 히든카드를 던지며 마지막 스퍼트를 준비한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고, 마지막으로 제시한 결말도 신선했지만, 이 강력한 반전의 히든카드는 던져지는 순간 그 뒤가 더 궁금해서 끝이 어떻게 될지를 궁금하게 하기보다는 '아 그렇구나'하는 맥빠진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멋진 히든카드를 가진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는 영화가 부족한 연기와 리듬감과 긴장감없는 연출력으로 인해 그 히든카드의 힘이 채 발휘되기 전에 힘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전개 속도를 따라가기엔 설명이 너무 많았고, 캐릭터들을 이해하기엔 설명이 너무 부족했고, 긴장감을 느끼기엔 속도가 너무 빨랐고, 그림을 즐기기엔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한국화의 묘미는 같은 한 줄을 그어도 다른, 단순함이 단순하지 않은 함의를 담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힘이 들어갈 곳에 힘이 빠지고, 힘들이지 말아야할 곳에 힘이 들어가, 균형이 맞지 않아 불안한 그림을 보는 듯했다.
물론, 짧은 시간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 2의 최동훈감독처럼 짜임새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출연을 기대했던 나같은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넘쳐나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