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마더 : 기묘한 섹슈얼리티 애증의 관계, 엄마와 아들에 대하여

090603 /  마더(Mother) / 야탑CGV / 19:55~22:05 / 지은

[스포일러 있습니다]

엄마는 항상 아들의 편이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보다 아들의 안녕이 더 걱정인 엄마. 아들을 위해 자신의 청춘, 인생, 열정 등을 다 바쳤지만, 성장한 아들은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크기와 세기가 조금 다를 뿐.

그 관계가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한국에서의 엄마와 아들간의 관계는 참 특이하다.
친구처럼 함께 늙어가는 딸과 엄마와의 관계도 아니고, 평생을 반목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길을걸어야하는 아버지(아빠가 아닌)와 아들의 관계도 아니다. 아빠의 축 처진 어깨를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딸과 아빠의 관계도 아닌...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는 유독 섹슈얼리티와 수많은 컴플렉스로 점철된 복잡하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복합적 관계이다. 영화 <마더>는 그런 관계를 노골적으로 들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사랑은 한이 없다는 이야기를 역설하는 쉽지만 힘든 영화이다.

엄마는 자신의 젖가슴을 물려, 아들을 키웠고, 자식의 덜 영글을 꼬추를 자기의 손으로 씻기고 키워, 아들을 남성을 키워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키운 아들이 장성하여, 좋은 배필을 만나 장가가는 것은 가족과 아들의 입장에서는 경사로운 일이지만, 기껏 키워놓은 엄마에게 있어, 아들의 출가는 커다란 상실과 진배없다. 영화 '마더'는 알다가도 모를 한국의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섹슈얼하게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섬뜩하게 그리지만 한없는 엄마의 사랑에 묘한 가슴의 울림을 갖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엄마와 아들에 대한 기묘한 관계를 단 한 장면으로 드러낸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다.
영화 초반, 진태와 함께 경찰서에서 돌아온 도준에게 온갖 좋은 한약제를 다 넣은 삼계탕을 도준에게 먹이는 엄마. 대화 도중, 묘한 눈빛으로 도준에게 '정력에도 좋다'라는 말을 한다. 아무것도 모를 것같던 도준이 정력을 '여자와 자면서 쓰겠다'는 요지의 말을 분절적으로 토해내자, 갑작스레 엄마의 눈빛은 차갑게 변한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은 엄마는 집을 나가는 아들에게 '약먹고가야지'라며 암갈색 한약을 들고, 도준을 쫓아간다.
엄마의 걸음이 멈춰선 순간은, 큰 길거리에서 벽을보고 오줌을 누고 있는 도준을 본 순간이다. 엄마는 이를 제지하거나, 도준을 가려주거나 하지 않고, 도준에게 살며시 다가가, 오줌누는 도준의 아랫도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들에 대한 엄마의 애정이란, 머리로 납득이 되지 않을 만큼 기묘한 섹슈얼리티를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치장(꾸밈)은, 이미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내의 외모에 관심을 갖지 않는 아버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엄마의 관심 아래있는, 자신이 심리적 우위에 설 수 있는 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다.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사랑을 원하는 여성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갖게 되면, 자식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집중하게 되는 또 하나의 대상이자, 자신의 사랑을 투영하여 바라보는 거울과 같은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아들의 경우, 가부장적 아버지의 가족애적 이탈로 인해 구멍난 엄마의 허전함을 채우는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아들에게서 찾고, 그 아들이 젊은 날의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아들에게 엄마는 자신을 키워줬지만, 성장하여 독립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할 벽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엄마의 한없는 사랑을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같은 엄마의 행위를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 어떤 엄마나 아들에게 보이는 관심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동일하며,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 불리며, 정신과적 질환으로 인식되지만,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정신과적 질환으로 규정하지 않고, 모성애란 이름으로 당연시하지 않는가. 

또한, 영화 <마더>에서는 들어나는 섹슈얼리티는 비단, 엄마와 아들 사이의 섹슈얼리티뿐만이 아니다.


형사 제문과 엄마, 진태와 엄마, 도준과 맨하탄 마담의 딸은 이미 내연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묘한 기운이 흐르고, 제문에게 진태는 어린 아이들을 대주면서 자신의 범죄를 용인받는 포주의 관계처럼 묘사된다. 고물상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내뱉는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수'는 사실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지만, 엄마에게는 감추고 싶은 관계에 대한 재회일 수도 있다. 수많은 인간들 사이에 미묘히 흐르는 섹슈얼리티적 기운은 제법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를 은근히 세밀하게 공들여 독특한 영화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권력과 뗄 수 없는 섹스, 그리고 다시 순환되는 돈의 고리. 영화는 엄마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또는 소유하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은연중에 흘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마더>속 엄마의 행위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는 다소 기괴하고,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의 행동을 비난 할 수 없다. 영화 <마더> 속 엄마의 모습은 비단 영화 속 모습이 아닌, 나를 키워낸 우리 엄마의 숭고하고 극단적인 선택과 행동과도 지극히 겹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 <마더>를 읽어나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영화 전반에 걸쳐 다소 모자란, 심지어는 바보라고 불릴 만큼 멍청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도준의 행동은 도준이 아직도 엄마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극단적인 행동의 양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준은 한시도 자신의 행동에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의 관심에 숨이 막힐 것같았고, 엄마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탈이 범죄로 표출되는 것이다.

도준은 범죄를 통해 자신이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혹은 독립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알리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다. 출소 후, 도준이 영화의 초반부에 비해 또박또박 말하고, 엄마의 침통을 찾아 돌려주고, 밥을 먹으면서 물을 떠오는 등의 적극적인 자기 의사 표시를 하게 되는 것 모두, 어찌되었든 도준이 자신의 범죄 이후, 엄마로 부터 독립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뉘앙스가 짙게 풍긴다.

도준이 엄마에게 고물상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려, 자신의 결백을 풀어내고, 엄마의 사랑을 이용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도준이 정말 그렇게 했느냐가 아니라, 아들은 그렇게 폐륜적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폐륜아마저 가슴 속으로 끌어안는다. 허벅지 위 한치 경혈에 대침을 박아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서라도 자식을 품에 안을 만큼 아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마더>속 엄마, 김혜자의 모습은 우리 엄마와의 얼굴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구석이 있어 더욱 가슴 짠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