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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 영화보기]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 원작의 치밀함을 좋아한 사람에게 이 영화는 재앙이다

090724 / 해리포터와 혼혈왕자(Harry Potter & Half-Blood Prince) / 메가박스 삼성 서태지M / 17:45~20:25 / 지은

※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는 물론, 책에 대한 스포일러도...



소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세 가지의 큰 이야기줄기가 촘촘하게 배치되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시종일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만점 소설이다.

1) 볼드모트의 흔적을 쫓는 해리포터와 덤블도어
2) 해리, 론, 헤르미온느의 성장과 연애담
3) 혼혈왕자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


이 세 가지의 내용 얽히고 섥히면서 적절한 비율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극의 흐름을 끌어간다. (물론, 연애담은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거기에 혼혈왕자에 대한 내용 비중있게 다루면서 과연 '혼혈왕자'가 누구일지 궁금증을 끊임없이 재기하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일조한다. 
 

볼드모트의 흔적을 쫓는 해리포터와 덤블도어

해리, 론, 헤르미온느의 성장과 연애담


혼혈왕자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
 
하지만, 우리가 만난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내가 마주했던 원작과는 전혀 다른, 해당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화로 보고서 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다소 긴 2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나마 내가 <해리포터>영화들을 큰 무리 없이 봐 왔던 것은 원작의 상상력을 기대 이상으로 복원해준 화려한 CG와 영상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해리포터 시리즈의 6편째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박진감 넘치는 퀴디치장면도, 해리의 지팡이끝에서 극적으로 발사되는 숫사슴 페트로누스도, 치열하게 싸우는 죽음을 먹는자들과 해리포터의 격전도 이젠 '이미 본 것'일 뿐... 새로운 무언가 혹은 정말 잘 만든 무언가를 통해 극장에 온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한다.
물론 그런 볼거리들은 여전히 훌륭하다. (특히, 펜시브와 펜시브로 만들어진 기억씬)


영화<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속 가장 매력적인 CG, 펜시브와 펜시브 속 기억을 드러내는 색감과 효과가 매혹적이다

훌륭한 CG와 특수효과를 갖고 있음에도, 영화는 원작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의 다채롭고 환상적인 세 가지 이야기의 어울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어설픈 각색 덕분에 그 풍성하던 이야기는 까맣게 타버린 덤블도어의 오른손마냥 앙상하기 그지없다.

풋풋하고 애틋한, 만지면 깨질 것처럼 섬세한 첫사랑의 가슴 떨림
을 경험하는 론, 해리, 헤르미온느의 연애에 로맨틱한 감정 묘사는 없다. 
덕분에 론과 라벤더의 급작스런 키스는 당혹스럽고, 그런 론을 바라보는 헤르미온느의 가슴 아픈 마음은 채 드러나지 못하고 여운없이 사라진다. 해리와 지니의 감정 역시 조금 더 공명을 줄 수 있는 부분일진데, 영화 속에서는 많은 부분 배제된 느낌이다. 결국은 인물들의 감정이 커가는 과정보다는 '론과 라벤더'의 정열적 키스에 더욱 공을 들인, 비주얼에 대한 안타까운 집착이 부른 결과다.  


뿐만 아니라, 해리에게 볼드모트를 이겨내게 할 지식과 힘을 주기 위해, 긴 시간의 여행을 통해 볼드모트에 대한 기억을 조합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덤블도어의 눈물겨운 (해리를 위한) 노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라는 명분하에) 과감하게 편집된다. 결국, 악의 근원을 추적하는 힘든 여정을 통해 온 힘을 다해버려, 점점 쇄약해지는 덤블도어는 없다.
다만 해리에게 덤블도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떠넘기는 비겁한 노인내로만 묘사될 뿐이다.



게다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혼혈왕자가 누구인지 궁금증'따위'를 유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혼혈왕자의 약초학 책'에 대한 해리의 집착과 그로 인한 헤르미온느와의 갈등 역시 드러날 틈은 없고, 그로 인해 해리가 '혼혈왕자'가 만든 주문인 '섹튬셈프라'를 외치는 순간에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진짜 혼혈왕자'와 마주하게 되는 장면도 감정의 기복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


네 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해리포터> 시리즈같은 책은 무엇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지 결정하는 '각색'이 영화 전체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잘못된 각색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텍스트같은 영화가 되었다.
책 속의 모든 내용을 담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책의 내용을 취사선택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시각효과가 뛰어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내용이 원작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게 더 우선이었어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호그와트에 사는 유령 달랑거리는 닉마냥 공허하게 부유하는 느낌으로 <해리포터>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죽음의 성물>에게 모든 기대감을 넘긴다.

물론, <해리포터> 시리즈의 어두운 세 편의 연작(5~7편, 불사조기사단/혼혈왕자/죽음의 성물) 중 '혼혈왕자'의 위치 역시 그 자체로 완결된 스토리를 이루기보단 시리즈의 화려한 결말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있기에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을거라는 건 안다. 그건 마치 <반지의 제왕>의 두번째 시리즈인 '두개의 탑'과 같은 위치였을게다.

그랬기에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책을 통해 '죽음의 성물' 최종 결과를 알고 있고, 그 화려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10년간의 기나긴 '해리포터'시리즈의 대장정을 맺을 클라이막스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덤블도어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단순한 당혹스러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며...

이제 마지막 희망은 2010년과 2011년에 개봉할 <죽음의 성물>에게 거는 수밖에 없다.


덧붙여...
<해리포터>에 '라벤더 역할로 출연한 제시 케이브 Jessie Cave의 얼굴이 낯이 익어서 생각해보니...
<금발이 너무해>에 출연했던 제니퍼 쿨리지 Jennifer Coolidge와 너무 닮았던거지...
사진 찾아서 붙여놔보니 더 그런 느낌 가득. ㅎㅎㅎ 모녀지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