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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기록/일상 속 옹알이

[김PD의 옹알이]<일부품목 제외>에 대한 단상

지난 6월 제로동(http://csioo.net)에 썼던 글.
세상살면서 느끼는 옹알이수준의 글.


6월.
여름 시즌 세일 간판을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도 내걸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세일. 세일은 무슨 세일. 가게가 sale(판매)를 한다는 것이 특별한 것인가.
sale이 아니라 bargain sale이겠지. 뭐 내가 잘나서, 영어를 잘해서 이런 말장난하는 건 아니고...
본질은 매장 언제나 어디서나 걸려있는 '세일'표지에 대한 의구심. 그 중에서도 콕 찝어 '일부품목제외'라고 적혀진 문구에 대한 생각을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보련다.

hooking / 낚시질.
인터넷은 물론, 마케팅에도 중요한 수단인 낚시질. '세일'이라는 간판을 364(!)일 내거는 가게들도 이 낚시질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SALE'이라는 낚시바늘에 걸려 들어간 매장에서 덤터기 쓰고 나온 경험은 비단 나만 있는 것이 아닐게다.
후킹의 방법도 가지가지 'SALE 40~10%'이거나 'SALE 일부품목 제외'
그 대표적인 사례. 
그래 나도 안다. 나도 마케팅이란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에게 사기치고 다니는 사람이다. 사기꾼 김PD.
알지만, 왠지 내가 당사자가 되었을 때의 그 찝찝함. 그 중에서도 'SALE'이라는 이름으로 사기 당했을 때는 그 찝찝한 기분이 단연 으뜸이다.  어제도 그러했다.

외근이 일찍 끝나서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초여름의 열기를 살짝 즐기고 있던 중, 패션브랜드 P사의 SALE간판이 덩그라니... 위풍당당 대문짝만한 S.A.L.E 글씨 아래 수줍게 자리잡은 '일부품목제외'에 대한 의구심은 마음속 깊이에서 날려보내고 매장의 문을 밀어젖혔다.
'아뿔싸' 들어서서 10초도 안돼서 내가 낚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매장 한켠에 있는 작은 행거의 절반도 안되는 부분에 세일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있었고, 결국 난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매장의 행거들을 이래저래 휘저으며 고행의 1분여를 서성이다 '원하는 게 없네요'라는 외마디 자기 변명으로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매장밖으로 나왔다. 문밖으로 나오자 내 발을 더 빨라졌고, 결국 그렇게 50m정도를 걸어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일부품목 제외' 도대체 뭐가 일부품목 제외라는 거냐. 일부품목 '제외'가 아닌 일부품목'대상'인것 아닌가. '일부'라는 말부터 규정을 다시해야하겠다. 한 부분 혹은 전체를 여럿으로 나눈 얼마를 뜻하는 '일부'는 '상식적'으로 전체의 파이에서 소수를 차지하는 양을 의미하는 어휘로 통용된다. 그런 사회적인 상식을 거스르는 '일부' 품목 '제외' 문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일으키기 부족함이 없다.

'일부제외'라는 말 속에서 대부분우리말이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점을 악용한 이 악질적인 후킹 마케팅으로 인해, 올 여름 처으로 서울의 수은주가 30을 찍은 어제. 난 80도 사우나에 앉아있는 사람마냥 1리터의 땀을 흘려야했고, 모처럼 일찍 끝난 외근으로 상쾌했던 기분도 급전직하하는 찝찝함을 맞았다.

고유가 시대에도 고객만족 서비스를 위해 에어컨을 틀어주는 친절한 기사님을 만난 퇴근길 광역버스 속에서 뇌밖으로 마실나갔던 이성이 돌아온 나는 슬슬 결론질을 짓기 시작했다.
답은? 알면서도...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낚시질에 걸려봤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대해 '혹시나'하는 기대를 갖는 것이 '생각하는 동물' 이라고 주장한 플라톤의 의견에는 반(反)하지만 기대치 않은 진화(진보? 쌔뻑;;)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형질아닌가. 그 역시도 나의 특징이고, 인간의 본질이며, 그런 우리의 형질을 교묘히 이용하는 낚시질 마케팅은 지구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지속될 것이다. 가끔 그 교묘한 존재들의 실수로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건지길 기대하는 나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