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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기록/일상 속 옹알이

[김PD 옹알이] 죽음으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에 무뎌져간다는 것은... : 김대중 전대통령님의 영면을 빌며...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18182157&Section=01


87일만의 일이다.

휠체어에 의지한 여든을 넘은 노구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자신보다 서른살 가까이 어린 후대 대통령의 영정앞에 국화를 헌화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남아있는 유족의 손을 잡고 망연자실하게 목놓아 울던 그 분이 세상을 떠났다. 

내 손으로 처음 뽑았던 대통령.
어려운 시기를 어려운 줄 모르게 지날 수 있게 해준 그분이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내 안에 담겨진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고약한 현실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놓고자 한다.

마음에 준비를 할 틈도 주지 않고 떠난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어쩌면 2009년에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중요한 분을 한 명 더 잃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결국,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던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이와는 다르게, 대중들 사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은 나이든 대통령의 어쩌면 당연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눈물이 마른 것같다고 위안했지만 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 동시에, 경험을 통해 체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기도 하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들은 임계점을 두고 그 임계점을 기준으로 모든 감각에 반응한다. 노무현대통령의 비통하고 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사람에 죽음에 무디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높은 임계점을 갖게 되었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죽음을 대통령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되,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끔찍한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모든 대통령들이 모이는 대통령 취임식장을 상상해보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으로만 채워질 첫번째 줄을 생각을 하니 온몸에 몸서리가 쳐진다.
민주적,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대통령을 잃었고, 고졸 출신이면서 모든 소외계층에게 희망이었던 대통령을 잃었다.

이제 우리가 살아서 볼 수 있는 대통령의 초상이란 군부독제세력 둘과 반민주 세력과 규합하여 IMF를 맞게 한 무능한 대통령 딱지를 가진 한 명, 그리고 고작 2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현실을 유신시절 못지 않은 대단한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는 한 명만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고자 했던 대통령들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앞 날이 캄캄하다는 건 바로 이럴 때 얘기하게 된다.

사람의 죽음은 그 누구의 것이든 허투루 다룰 수 없다. 하지만 석달도 채 못되는 시기에 한국 민주주의 정착에 노력해온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는 슬픔을 이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 두렵다. 민중은 그렇게 덤덤하게 국민장을 기다리고 있고, 뚫린 입과 쉬운 손가락으로 마구자비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 전라디언의 아버지, 죽을 X이 죽었다 등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놀랍다. 죽음을 애도해야하는 임계점이 높아진 탓인가. 아니면, 지금 세상이 문제가 있는 것일까.

심지어는 이런 글까지 논평으로 내는 집단이 있다는 건, 세상이 문제가 된 것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한다.

연달은 두 민주주의 거두의 죽음 덕분에 우리나라의 몇몇 인간은 두려움을 상실했고, 이제 망발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두려운 건 이제 시작일거라는 거다.
세상에 쓴소리할 어른들의 죽음으로 우리나라 사회는 균형을 잃고 어디로 표류할 지 불을 보듯 뻔한 결론으로 치닫을 게다.

제발... 우리가 사람인 이상.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았으면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