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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기록/일상 속 옹알이

[김PD 옹알이] 인생은... 죽을 때까지 걸어가는 '어른이 되어가는 길'

오랜만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나의 두번째 집을 계약하고 온 오늘입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한 설렘보다는 '이제 또 어른이 되는 한 단계를 거치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난 한 달간의 집주인과의 고난한 줄다리기, 아내와의 사소한 말다툼, 집을 구하는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결혼 당시 왜 이 집을 사지 않았을까하는 후회와 회한들이 맞물려 밥을 먹는 목구멍은 칼칼하고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고통에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을 고릅니다.

사실 저는 살아오면서 '내가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도 않지만...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했을 때에도 그랬고,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의 무기력감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세상은 언제나 내게 더 큰 명제를 던져줍니다.
그 큰 명제는 바로 선택의 갈래에서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지요. 물론 이때까지도 나에게 책임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책임은 나의 몸둥아리 하나만큼의 것뿐이었으니, 그 선택의 책임의 귀결이 나에게로 난 것이니 감당해야하는 주체는 나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 제가 결혼을 결심하면서는 책임의 주체는 여전히 '나'이지만 그 모든 걸 함께 나누어야할 사람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전 결혼이 '제가 제대로 어른이 된 기점'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오늘 사랑하는 아내와 저의 두번째 집을 계약하고 왔습니다.
아. 정확히 이야기해야겠네요.
사랑하는 아내와 저의 2년간의 거처, 두번째 전세집을 계약하고 왔습니다.
계약을 하고 돌아오면 마음이 어느정도는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싶습니다.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전세는 참 없습니다. DTI로 부동산 경기가 다시 위축되고, 오를 데로 오른 좋은 집을 지금의 가격에 내어 놓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하나하나 찾아내야합니다. 하지만 나보다 아내가 더 한발 앞섭니다. 나한테는 괜찮다고 합니다. 아내가 알아본 매물을 함께 보러다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럼 내가 해야하는 건 사람들을 대해서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조금 더 치열하게 나와 아내, 우리의 이익을 위해 목숨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에게도 화가 납니다. 아니면 '아내가 원하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집을 고르는데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비겁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납니다. 결정을 하지 못해 부모님을 모시고 마지막으로 최종 결정을 검증받은 것도 석연찮습니다. 아직도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는 치마폭 속 둘째 아들일 뿐입니다.

집주인과의 고난한 싸움은 저를 지치게 합니다. 온 몸에 진이 빠집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더 스스로를 다잡았어야합니다.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되지요. 그게 그 고난한 싸움에서 우리 가족이 평안할 수 있는 얼마간의 이익을 안겨주는 일이었다면 말입니다.
부동산과의 흥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군데 부동산에 우리가 살 집을 알아봐달라고 얘기하는 건 미안한 부탁이 아닙니다. 하지만 난 그 사람들에게 조금씩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A라는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B라는 집에 더 좋아보여서 A라는 집을 알아봐주던 부동산과의 약속을 취소하는게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다는거죠. 하지만 굳이 그런 감정적인 부분이 개입되었어야하나 싶습니다. B가 우리가 사는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면 그렇게 하는게 '맞습니다'. 가격 흥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500만원, 1000만원. 매물없는 전세라고 내가 그렇게 그냥 수긍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싸움을 통해 가족과 나의 이익을 얻어내야죠. 나는 가장이니까요. 그게 내가 맡은 일이고 책임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잘해내지는 못했습니다 30년 넘게 우리를 끌어온 어머니를 모셨고 결국엔 나와 아내에게 큰 전리품을 선사해주셨습니다. 거기에 밥도 사주시고 가시네요. 불러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참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어젯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크지 않은 전세집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좋은 집을 본 것같았던 그 순간에도 아내는 잠깐의 즐거움이후엔 담담한 표정입니다. 그러고는 어젯밤 꽤나 쌀쌀한 날씨에 거실에서 잠을 자자고 합니다. 마음이 시큰합니다. 새로 이사해야할 집의 소담한 거실에서는 아마 이렇게 밖에서 잠을 청하지는 못할 것같습니다. 잠이 든 아내의 얼굴은 천사같은데 눈가에는 이슬이 영롱하네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계약하고 싶은 집을 보여드렸습니다. 나름 고르고 고른 집이라 이정도면 괜찮다하실줄 알았는데 집을 보고 나오는 아버지에게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집은 어떠세요'라고 물어봅니다. 아버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서글프네요'
참 많은 마음이 담겨있는 것같습니다. 2년에 한번 거처를 얻기 위해 전전해야하는 며느리, 아들내외가 안스럽고, 나름 좋은 집을 해주셨는데 2년만에 허름한 집으로 이사하는 며느리, 아들내외가 처량하고, 또 아마 그때 아버지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생각하셨을 겁니다. 지금의 제가 그런것처럼...
아마 장모님과 장인어른도 비슷한 마음이시겠지요. 아직도 철딱서니 없는 사위와 항상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내게는 너무나도 넘쳐나는 훌륭한 아내. 그런 사위와 딸의 집이 지금보다는 조금 좁아진 것에 마음 아파하실 것을 생각하니 면목이 없네요.

계약후 돌아온 아내와 저는 심한 육체적 피로감을 느끼며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그간의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한순간 풀려서일까요.
아내의 품은 어느때보다 따뜻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저는 참 행복한 남자입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가며 걸어야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일단... 저와 사랑하는 아내의 굳은 네 발로 걷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어른, 남편이 되어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