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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기록/일상 속 옹알이

[김PD의 옹알이]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축제가 되어라 :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를 다녀와서...

오늘 분당 야탑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분향소를 다녀오면서 이청준 작가의 '축제'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소설 '축제'에서 묘사되는 한국의 장례식장은 고인을 떠나보내는 눈물 가득한 이별의 현장이기도 하면서도, 고인의 추억을 회상하는 추억의 자리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욕의 생을 마감한 고인의 유지를 받을어 용서를 하기도 하는 화해의 장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장례'는 하나의 '축제'의 장이 되어 신나는 한판 씻김굿같은 뒤범벅이 된 감정들을 여과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을 향해가는 제가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었겠지만, 퇴근 후, 하교후 귀가길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얼굴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슬픈 얼굴만을 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 딸의 손을 잡고 한 손엔 국화꽃을, 가슴엔 근조 리본을 단 부모들은 아이들의 철없음을 꾸짖기도 했지만, 그런 아이들의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되려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 함께 나와준 아이들이 대견했는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분도, 맛있는 사탕을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엄숙하기만할 것 같던 분향소의 분위기를 환기해주기도 하였고, 저쪽 한 켠에서 노사모회원들이 틀어주던 생전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는 영상들은 생전 노무현 대통령의 힘찬 연설과 소탈한 미소를 보여주며, 입가에 미소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미소와 눈물을 함께 짓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일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마음아파하고, 인터넷에 실린 수많은 게시물을 보면서 눈물 흘리던 저는 막상 방명록에는 긴 글을 남길 수 없었습니다. 무어라 말해도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커질 것같아서였겠지요. 
게다가 분향소에서 흘릴 눈물들이 너무 걱정이었으나 되려, 함께 분향소를 찾은 아내의 예기치 못한 눈물을 닦아주느라 여념없었습니다. 새삼 아내와 함께 이곳 분향소를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더군요. 다양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분향의 순간과 장소가 축제의 순간과 장소로 여겨진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마음 한켠은 여전히 허전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모여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만들어졌음에 뿌듯한 마음이 밀려들었기 때문에 아마 눈물보다는 담담한 마음으로 그의 마지막 길에 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노사모 자원봉사자분들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촛분들이 추모객들의 손으로 옮겨서 순식간에 큰 빛을 이뤄갔습니다. 자칫 길을 지나는 행인들의 걸음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분향을 준비하는 줄은 점점 더 길어져만 갔고, 그 순간순간에도 더욱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승철의 노래로 만들어진 노무현 대통령 추모 UCC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들으며, 군데군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그의 연설에 박수를 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방법은 다양했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상주의 자리를 지켜주시던 노사모분들이신데, 몸이 불편하신데도 오랜 시간 서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마음이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헌화와 분향은 계속해서 차분하게 이뤄졌고, 촛불이 늘어날 수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음이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지난 몇일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야하는 29일 영결식날도 그렇게 힘들겠지요.
하지만 당신을 떠나보내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그 순간까지 예우를 갖추지 않는 막돼먹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광장 폐쇄와 몇몇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만원, 변희재, 김동길, 조갑제 등의 망발이었습니다.
거기에 '담배 있나'라는 말과 함께 떠난 노무현 대통령을 애도하던 우리에게 노무현대통령이 망자가 된 그 순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혹과 숱한 음모론들은 차마 들어주기 힘들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가 원내대표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망언을 했더군요)
분명, 그 의혹들에 대한 궁금증을 저도 갖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조용히 그리고 축제의 분위기로 노무현 대통령을 마음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더 먼저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분명 이 순간, 우리가 제기하는 의혹과 음모론에 박수치며 좋아할 사람들이 너무 뻔하기에, 목에 핏대 세워 각을 세우기보다 함께 왁자지껄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축제와 같은 영결식이 되길 꿈꾸게 되었습니다.
분명 너무 많은 슬픔이 몰려와 축제와는 거리가 멀 수 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노래와 춤과 시와 눈물과 마음을 다해 힘겨웠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가 절대 혼자가 아니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오늘 당신의 영전에 바친 국화 한 송이입니다.
짓이겨진 검은 부분은 곱게 골라내고, 꽃잎 하나하나 모아 당신의 웃는 사진 앞에 놓아드렸습니다. 그런 마음이,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