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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미쓰 홍당무:주류영화계를 낚시한 발칙한 상상력이 주는 키치한 유쾌함

081017 / 영화 <미쓰 홍당무> / 삼성동 메가박스 / 19:45~21:25 / 지은, 처형


1. 공효진, 그녀의 엉뚱한 매력에 낚이다
- 배우보다는 패셔니스타로서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한 공효진이 한눈에 보기에도 떡지고 거친 머리에 온 얼굴이 벍게진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이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배우로서의 공효진은 패셔니스타로서의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져 왔었는데...
데뷔작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Memento Mori'는 왕따당하기 싫어하는, 자기 방어기제로 다른 사람을 따돌리는 (A형임이 분명할) (가슴)절벽소녀로, '품행제로'에서는 류승범과 일진커플인 나영을...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에서는 복수가 전부였던, 그랬기에 더욱 쿨하게 경이에게 복수를 보내줄 수 있었던 송미래를 연기했으며, '고맙습니다'의 억척스런 미혼모로 연기. 소외된 자, 비주류 역할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며, 좋은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기특한) 공효진. 

그녀가 '미쓰 홍당무'를 선택한 그녀의 선택이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지만서도... 직업상, 그녀를 섭외할 대상인 패셔니스타로 인지하고 있다가 공효진의 망가진 모습을 보는 것이 생경한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패셔니스타적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엉뚱 발칙한 캐릭터로 사료되는, 뭔가 특별한 것을 만날 것만같은 묘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위의 포스터로 인해 이 영화, 너무 보고 싶어졌다.


2. 싸이보그이기에 괜찮아 : '미쓰 홍당무'에서 박찬욱을 느끼다
- 영화를 보고나서 크레딧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그가 제작한 첫 작품이라고 그렇게 많은 언론 자료가 나갔음에도 이를 영화 크레딧에서야 처음 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미쓰 홍당무'에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느꼈다. 이번이 첫 장편영화 데뷔작인 이경미 감독에게서, 국내 최고로 오만한(그리고 충분히 오만할만한) 박찬욱감독의 향기를 느꼈단 말이다.
박찬욱감독은 오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파둔 보이지 않는 길로, 관객들을 교묘하게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관객이 그 길을 따라 자신이 원하는 결말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하면서 엔딩에서 그들에게 자신의 회심의 펀치를 날려 다리 풀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박찬욱의 영화를 보면서, 어떤 영화를 보면서든 기대하게 되는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감은 어떤 연유에서든 그 기대감은 실현되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송강호의 복수는 실현되지만 복수는 실패하는 것처럼, '올드보이'에서의 우진도, 오대수도 모두 자신의 목적을 실현했다고 여기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이는 박찬욱이 조물주되어 만들어낸 영화 속에서 관객은 철저히 박찬욱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캐릭터의 일탈과 사건의 반전을 통해 빈번하게 자행된다.
물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그가 조물한 세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공간이지만, 박찬욱의 뛰어난 영화적 재능은 감히(!) 그가 오만하게 미학적 완성도 높은 작품과 오락성 있는 작품을 오갈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런 박찬욱의 영화관은 최근작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통해 더욱 도드라지는데, '비', '임수정'을 데리고 만든 처음으로 만든 멜로드라마인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그의 첫번째 제작 작품인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의 기괴한 연애담(라고 부를 수 있다면)과 지극히 맞닿아있다.

사회성 결여된(혹은 결여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외로운 성장기(JSA, 금자씨, 올드보이,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공히 같은 범주)이며, 처절한 러브스토리를 스토커적으로 기괴하게 풀어낸, 여성판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향기가 나는 이 소재적 유사점때문에 '미쓰 홍당무'에서 박찬욱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뿐 아니라, 화면 한가득 여배우의 분장 얼굴을 고스란이 담아내는 대담함과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강요하기보다 넌센스적 상황이 맞부딪히는 모순된 상황을 즐기는 점(미숙, 종철, 종철의 처, 종희, 이유리선생이 맞닥뜨려 벌이는 난장극), 기괴한 유혈낭자 선호, 키치적 유머감각 등은 박찬욱의 유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물론, 결말부의 다소간의 희망적인 열린 결말은 차이를 보이지만...
박찬욱 감독이 발굴한(미장센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하면서) 이경미 감독의 발칙함은 적어도 박감독에의해 사이보그적 감성이 더욱 발현될 것이 분명할 것 같은 기대 반(좋은 영화에 대한), 걱정반(박찬욱 만큼 오만할까봐)이 든다. 물론, 그늘에 머물러있는 어설픈 감독이 아닐거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주류 영화에서 흔히 만나기 쉽지 않은 키치적 유머감각과 바람에 대한 유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가진 이경미감독의 다음 작품은 얼마나 더 멀리 더 멀리 나아가 있을까...


3. 여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세밀한 구성
-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괴리감이라고나 할까. 와이프랑 처형은 웃는데, 나는 한 템포 늦게 상황이 받아들여지는... 다소 멍청한 시추에이션이 반복되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남자관객 대부분의 문제로 느껴진다. 또한 관객의 80%정도를 차지한 여성관객의 수는 이 영화가 상영전부터 여성의 코드에 링크되어있음을 느끼게 한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는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해' 라는 양미숙의 주옥같은 경구로 시작하는 미쓰홍당무는 문도 열기 전 혼자 선글라스를 끼고 닭발을 먹을 정도로 소심하지만 굴하지 않는 궁극의 여성형을 보여준다. 열심히 사는 그녀의 모습은 삽질이라는 생산적 활동을 통해 가슴속 열기를 발산하는 소심함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그런 자기 자신의 신념을 굽히는 법은 없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별로라는거'를 만인(양미숙 world에 존재감있게 자리한 모든 인물들, 서종철, 그의 연상부인, 그의 딸 종희, 이유리선생) 앞에서 커밍아웃을 한 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양미숙을 보며 굴종없는 올곧은 여성상을 바라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고교시절 총각선생님과의 짝사랑 판타지, 아웅다웅 다투면서도 함께 화장실가는 친구사이여야하는 여자친구들 간의 이야기는 남자들이 오롯이 이해하기엔 부족한, 많은 행간속에 남겨진 세밀한 구성덕에 100분동안 극장안은 뻥뻥 터지는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

아, 어쩌면 양미숙선생에게 이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못한 BASE로 한점깔아주는 인간이 있다는 데에서 오는 편안한 심리상태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유에서 오는 웃음코드였을까. 아니면 이유리 선생같은 캔디같은 인간도 결국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변선생에 천착한데 반해, 양미숙 선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박찬욱 선생을 찾아 떠나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주체적 여성상에 통쾌했었던 걸까.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아니면 그냥 너무 재밌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외에도 무게나 잡는 연예인이라 생각했던 이종혁과 엄지원을 닮은 듯한 황우슬혜, 옥메와까를 외치던 소녀(서우)의 재발견은 영화 전체를 삽질하여 곱게 다진 공효진의 노력을 받쳐주는 큰 조력자들이다. 특히 부르튼 입술로 메이크업을 대체한 어린 서우의 여린 방어기제를 가진 캐릭터는 이미 공고한 방어기제를 가진 공효진의 또 다른 버전이며 둘이 대구를 이루며 기괴한 앙상블을 이끌어낸다.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는 그들에게 날라드는 온갖 오물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신에서 그들은 이 엉뚱한 난장을 통해 한단계 성숙하고 사회로 나아갈 한 발을 내딪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대략 이 영화 '미쓰 홍당무' 예상 흥행기록 전국 250만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유는? 19세이상 35세 이하 관람가 영화. 35세 이상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유머코드와 부산스러운 진행이 흥행에는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여성관객의 입소문을 통해 어느정도의 흥행은 따놓은 당상으로 보여진다.

영화얘기보단 박찬욱과 공효진 얘기를 더 많이 했다. 하지만 얘기할 거리는 더 많은 영화인것같아. 시간될 때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영화다.

와... 첨으로 블로그 뉴스에 베스트 글로 올라왔네요. ^^; 부족한 글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