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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기록/일상 속 옹알이

[김PD 옹알이] 태윤아! 야구보러가자! : 11살 야구도사와 34살 김PD의 신나는 야구이야기

사진 속 두 주인공.
11살 태윤이
34살 김PD
활짝 웃는 우리 둘의 표정.
뭐가 그리 즐겁냐구?
자.. 우리 얘기 한번 들어볼래...?


초등학교 4학년인 태윤이는 멜번에서 11살 생일을 맞았다.
야구를 좋아한지는 1년 조금 넘었고,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는 기록으로 말하는 솔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윤이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단 한번도 야구장에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야구 경기를 많이 보지도 못했단다.
이유는?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네 11살배기 친구들은 야구장을 다니고 야구 중계를 볼 시간이 없다.

하지만 체육시간에 친구들과 야구를 하면 태윤이가 가장 잘 한다고 한다.
태윤이는 투수고, 빠른 공을 던진다.
LG트윈스의 팬이고, 봉중근(이라 쓰고 봉의사라 읽는다)을 좋아한다.
하지만 올해 LG의 성적이 좋지 못해 속이 상해했다.
그리고 너무 월등한 실력으로 1위를 달리던 두산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 대화를 할 당시, 4월 10일에는 LG의 성적이 좋지 못했다. 두산도 2패만 있을 뿐, 선두를 질주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기록을 외우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시즌 타율 BEST 5를 외운다.
'82 백인천(0.412) > '94 이종범(0.393) > '87 장효조(0.387) > '85 장효조 (0.373) > '09 박용택(0.372)
수많은 기록들을 외우는 것이 기쁘다는 태윤이다.

김PD는 올해 34살이다.
1982년 프로야구 시작 당시, OB 베어스 어린이회원이었고, OB의 우승으로 OB 베어스의 마스코트가 새겨진 컵세트(12개)를 받았다.
야구를 좋아한지는 30년이 다 되어간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는 기록으로 말하는 솔직한 운동이고,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PD는 야구장에 가본지 조금 됐다.
그리고 중계방송을 챙겨보지도 못한다.
이유는? 2010년을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아저씨에게 한가롭게 야구나 보고 있을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매일 아침 지하철 메트로는 스포츠면부터 찾아본다.
두산베어스의 팬이고 김동주를 좋아한다.
올해 두산의 성적이 괜찮지만, 초반에 너무 잘 나가서 오버페이스가 될까 걱정이다.
그리고 기아나 SK를 싫어하지만,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년시즌 기아가 우승한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김PD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 기록을 외우는 것을 좋아한다.
시즌이 지속될 수록 안타하나에 따라 선수의 타율이 어떻게 변하고 타율 랭킹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는 것이 재밌다.
투수의 평균자책점도 마찮가지이다.

태윤이가 야구 통산 시즌 타율 BEST 5를 외우는 것을 바라본다.
꼭 김PD의 어린시절같다...
야구에 열광하던 소년은 어른이 되었고, 조금씩 야구를 엿보며 즐기고 있다.


순수한 아이와의 대화는 진행이 빠르다.
자신의 의견을 간결하게 말하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를 쫑긋한다.

김PD는 스물세살이나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박수를 치고 공감하고,
아이는 스스로 완벽하게 기록을 외우는 것에 기뻐하며 나이많은 삼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선동렬이 최고에요, 최동원이 최고에요'
이분법을 가르칠 수 없어, '두선수 다 훌륭하다'라고 말하지만 내 마음 속 선동렬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자 태윤이는 펄쩍뛴다.
최동원도 훌륭한 투수인 건 최고는 선동렬이고 그 뒤는 최동원이란다.
이유는? '기록이 그러하니까.'
84년의 최동원을 보지 못했고, 89년의 선동렬을 보지 못했음에도 태윤이는 기록으로 야구를 이해하고 있다.
'남는 건 기록이구나'하면서도 아이의 기억력과 야구에 대한 열정에 깜짝 놀란다.
하지만 김PD가 태윤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야구가 갖고 있는 본질.

'기록만이 전부가 아닌 야구. 순수한 운동에 대한 두 열정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열광의 도가니'
그것이 바로 야구의 본질이라고 얘기했다.


새로운 사실에 태윤이의 귀가 곤두선다.
예를 든 경기는 1993년 우리나라 최고 투수 선동렬과 한국시리즈에서 맞서 싸운 삼성의 박충식이라는 선수 이야기.
상대적인 전력 약세의 삼성과 해태가 맞선 93년 코리안시리즈 3차전.
1:1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시리즈에서 3차전을 가져가면 전체적인 승부의 키를 움켜쥘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
해태는 한국시리즈의 사나이문희수를, 삼성은 14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등장한 신인 박충식을 선발로 내세웠다.
팽팽한 투수전을 이루며 1:1로 6회를 마치자, 해태는 서둘러 승부수를 던진다.
'선동렬'. 최종 보스의 이른 등장.
선동렬의 등장과 함께 삼성팬들은 패배를 직감했다. 어쩌면 삼성의 선수들까지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열망했던 이가 바로 '박충식'이었다.
그는 어깨가 부서져라 공을 뿌렸고, 선동렬에 맞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맞섰다.
박충식이 1실점하자, 삼성의 타자들은 선동렬을 상대로 힙겹게 1점을 뽑아 그의 어깨를 독려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10회에 선동렬이 마운드에서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타자들은 이어지는 해태의 계투라인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동안 박충식은 총 15이닝동안 200개에 가까운 공을 던져가며, 팔꿈치에 엄청난 무리를 주는 싱커를 계속해서 던져가며 해태의 타선을 농락했다. 결국 그렇게... 해태와 삼성의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2:2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이후, 삼성은 에이스 김상엽을 앞세워 4차전을 따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마치 슬램덩크에서 '산왕을 이긴 북산처럼'... 3연패하며 10년묵은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패배했지만, 박충식은 삼성의 영웅이 되었다.
박충식이라는 선수를 모르는 태윤이에게 이 야구 얘기는 새롭게 다가왔다.
기록만이 야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윤이는 여전히 야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중간고사기간...
중간고사가 끝나면 꼭 태윤이와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
두산과 LG와의 서울라이벌전을 관람하기로 했다.
서로 응원하는 팀은 다르지만 야구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더없이 즐거운 경기가 될 것이다.
가능하면 태윤이가 좋아하는 '봉중근'이 선발로 나오는 경기면 좋겠다.
그리고 또 솔직히 그 경기에서는 LG가 봉중근의 역투로 승리하면 좋겠다.
가급적이면 4:3같은 한 점 승부로 이겼으면 좋겠다.
압도적인 승부는 맥이 빠질 것이고, 지나친 투수전은 지루할 것이다.
두산이 3:2로 앞서가던 순간, 태윤이가 좋아하는 이진영이 싹쓸이 2루타로 2점을 내서 역전하는 것도 좋다.
명승부를 처음으로 야구장에서 만난 태윤이는 야구가 갖고 있는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겠지.
그게 30년 야구팬으로서 어린 소년팬이 더 야구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일테다.
물론, 승부는 선수들이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태윤아 곧 야구 보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