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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기록/결국, 흔해빠진 맛집 얘기

[김PD, 흔해빠진 맛집얘기] 운모하 : 인사동에서 발견한 오아시스같은 고요함이 있는 곳

인사동.

이젠 삼청동과 부암동이 강북의 문화를 이끄는 중심지역이 되었지만...
내가 종로의 서울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허리우드, 코아 아트홀, 아트 선제센터에서 영화라는 문화에 빠져살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인사동은 가장 강북스러우면서도 서울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흩어진 다양한 문화의 파편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묘한 울림이 있는 독보적인 공간이었다. 

어린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적절한 뽑기와 쫀듸기, 딱지와 손떼묻은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파는 노점상 아저씨와 골목골목 뒤져야 찾을 수 있는 소규모의 화랑들과 무너져내릴 것같은 피맛골의 전통주점들. 향내짙은 국화차향기 가득했던 찻집과 귀천 속, 피천득시인의 향기로 느낄 수 있는 아련함들.

버석버석한 콘크리트 바당을 터벅터벅 마냥 걸어도, 후미진 찻집 구석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종이냄새 풀풀 풍기는 낡은 3000원짜리 소설 단행본을 읽으며 행복했던 그 시절의 정서. 공기들.
생각만으로 세상을 가진, 꿈을 꾸는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안식의 공간이었던 인사동.

이후 인사동은 2000년 당시 서울시장(!)의 전폭적인 지원하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주력 상품(!)으로 포장되기 시작했고, 검은색 돌로 닦여진 거리와 새로 들어선 다양한 건물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필터링되지 않은 다국적 산업적 문화들의 유입으로 2009년 인사동은 종로쪽 인사동 입구에서 변함없이 울리는 알루미늄배트소리의 500원짜리 야구 배팅머신과 한글로 적혀진 '스타벅스'간판, 그리고 오가는 일본, 중국 관광객을 호객하는 '꿀타래(혹은 용수염)'로 기억, 대표되는 어설픈 문화 마케팅으로 망가진 '한국 전통'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3월 결혼 러시덕분에 모처럼 찾은 인사동은 (여러가지 면에서) 여전했고, 넘쳐나는 숱한 사람들 속 부딧치는 어깨와 소음 사이에서 예의 인사동 스러운 여유와 낭만을 느낄수 있는 공간을 찾아 배회하고 있었다.

'갤러리 157'이라는 다양한 전통물건을 파는 것처럼 보인 갤러리 혹은 전통상가가 눈길을 끌어 들어가보았다. 역시나 속안은 볼 것별로 없는 황량함이었고, 이내 발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갤러리와 연결된 작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넓지 않은 정원에 몇몇 라운드 테이블이 자리잡은 아담한 구조.
시끌벅적한 소음으로 가득했던 인사동 길 한가운데와 단절된듯한 시간이 멈춰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전통을 강요하지 않은 외양을 갖고 있음에도 인사동스러운 느림의 미학과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음이 기분좋았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옆에 보이는 것은 오래된 '목욕탕' 굴뚝과
예전 영화 동호회 사람들과 자주 들렀던 전통주점 '싸립문을 밀고 들어서서'의 간판'
옛기운이 느껴지며 평안함을 찾게 해주는 공간은 기억과 추억도 아름답게 돌려놓는다.  

주요메뉴는 와인과 이탈리안 비스트로.
점심과 저녁 가격이 병기된 '운모하'의 메뉴판.
다양한 메뉴는 아니지만, 깔끔한 메뉴.
재밌는 것은...

메뉴판 한켠에 적어놓은 파스타의 영양에 대한 글.
누가 읽을지 몰라도, 넓은 메뉴판에 이렇게 많은 공간을 할애한 설명은 인사동스러운 지식공유에의 의미와 친절함을 상기시킨다.

사실, 잠시 발을 쉬게 해줄 요량으로 다소 쌀쌀해지는 날씨에 테라스에 앉았다.
간단하게 주문한 메뉴는 샹그리아와 하우스와인 화이트.
스파이시한 첫맛과 샤도네이치고는 묵직하지 않은 산뜻함이 하우스와인으로는 적격이었다.
멋내지 않은 지난 붉은 색이 더욱 맛깔났던 샹그리아.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앉아있다보니 쌀쌀하기로 했고,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운모하'에서 보내기로 하고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파란색 선명한 가죽 카우치와 골드 스팽글위에 양모 꼬임으로 만든 쿠션은 센스만점 인테리어.
어린아이들의 사진에 갖가지 변화하는 조명을 넣은 사진 작품 전시회는 갤러리 본연의 기능과 멋드러진 인테리어 역할을 하고 있다.

카우치에 앉아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면,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에 검은색 운모암타일로 만든 바가 멋드러진 비스트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샹그리아와 하우스와인과 곁들여 주문한 음식은 이탈리아식 홍합탕.
살굵은 홍합과 적당한 매콤함이 가미된 국물맛 역시 일품.

일행이 늘어 리조토와 파스타를 주문하자 갖구운 빵들을 서브해준다. 잘익은 올리브와 구운 통마늘도 함께...

너무 예뻤던 발사믹과 올리브 오일 용기.
큰 병에는 올리브 오일을 담고 안에 담긴 포도송이 모양 용기에는 발사믹을 담는다.
각 병입구 마개는 예쁜 과실모양으로 포인트...

대게살을 넣은 크림소스 스파게티.
다소 간이 짜게 되었으나, 푸짐한 게살이 들어있어서 대만족.

단호박과 샤프란을 넣어 만든 리소토.
특별하진 않지만, 담뿍 들어있는 홍합, 조개, 새우, 오징어등의 해산물이 풍부하다.


마무리는 라바짜 잔에 서브되는 커피한잔...
VAT도 별도이고, 평일이 아닌 주말, 저녁 가격은 만만찮은 가격이 나왔다.
하지만, 햇수로 3년이나 된 인사동의 보물같은 장소를 알게된 것만으로...
예의 느꼈던 평안한 인사동의 공기를 새삼 느끼게 해준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느끼게해준 오아시스같은 곳이었다.
 
지도 참고 : http://kr.gugi.yahoo.com/ymap/map.php?pos=496790|1130547.5&pr_text=운모하

정말 한번 찾으면 다시 찾고 싶은 그런 공간, 운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