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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BlaBla/김PD의 발로 뛰는 스타일

[김PD의 발로 뛰는 스타일] 디지털 세상을 움직이는 아날로그 스타일 : 3D입체안경, 샤넬 프레젠테이션, 아이폰


디지털이 세상을 빨리 돌아가게 해준 것만은 사실이다. CD가 LP를 밀어냈듯, CD는 mp3에게 자리를 내주고, 아이패드가 출시되면 종이 냄새 나는 서점도 추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D의 아바타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일회성 특별상영이 아닌, 영화판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요즘.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아련히 느껴지는 기묘한 향수와 감성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적 파편들이 눈에 들어온다.

 



 - 2, 3월호 잡지를 펴면, 십중팔구 종이로 만든 무언가가 떨어져 깜짝 놀라킨다.


한쪽엔 빨간색, 다른 한쪽엔 파란색 셀로판지 렌즈를 가진, 입체영상을 보기 위한 종이 안경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영화 <아바타> 3D를 볼 때 만났던, 두툼한 안경의 정교함, 이질감과는 다른 친숙함이 있는 종이 안경이다. 
 

 

안경이 들어있던 잡지의 해당 페이지를 펼쳐들고, 접힌 종이 안경을 편 상태로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안경을 쓰면, 눈앞에 펼쳐지는 입체 세상.


손을 휘휘 저어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불룩하게 튀어나온 입체사진을 잡아보지만 허공을 가르는 손만이 입체사진을 방해한다. 10살 전후, 놀이공원에서나 했었던 환상적 경험이, 30대인 내게, 패션잡지 속 키치한 아날로그적 경험으로 치환된다. 몇 페이지에 뒤에 만나는 QR 코드, AR 코드 광고와는 다른 묘한 친밀감. 기술적인 놀라움보다는 별도의 안경이 거추장스럽기도 하지만, 신세계를 보여주는 QR, AR코드 광고보다는 익숙함 속 독특함으로 승부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호소하는 종이 입체안경이 정겹다.

 

 
- 이제 더 이상 런던에 가지 않아도 버버리 컬렉션을 생중계로 만날 수 있다. 예전엔 실시간 방송이면 저화질 스트리밍도 쉽지 않았는데, 이젠 HD급 화질을 버퍼링없이 만날 수 있다. 루이비통 컬렉션도 트위터와 아이폰으로 즐길 수 있단다. 반길 일이다. 세계 4대 컬렉션을 다 직접 보려다간 한 시즌만에 파산해야할 참이니, 생생함을 바로 느끼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2009년 11월의 파리. 김PD는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하루 3시간 밖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파리에서 만나는 전세계 유수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 했다. 고정좌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단 10분여의 쇼를 보기 위해 자라목을 하고 조금이라도 좋은 스탠딩석을 잡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자리 싸움이 좋고, 쇼 무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런웨이가 좋다.

 


그런 공기를 재현한 지난 11월 열린 파리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 ‘샤넬’ S/S 컬렉션이 재현된 2010 S/S 샤넬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풀냄새, 거름냄새 피어 오를 것 같은 샤넬의 런웨이가 재현됐다. 우아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 그리고 화이트와 블랙만으로 이렇게 섹시할 수 있음에 놀라게 된다. 조금 더 생기있고 발랄한 분위기의 파리패션위크와는 다소 다르지만, 패션위크를 충실히 재현한 런웨이만으로 충분하다. 한 시즌 브랜드의 룩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브랜드의 히스토리와 아이덴티티, 현장의 생생한 공기를 재현하는 것. 직접적이지만 매체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샤넬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스타일이자 패션이며, 디지털 세계를 움직이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아닐까.

 


 - 아직도 나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효도폰이다.
아이폰 출시 단 몇 달을 못 참고, ‘2년의 노예계약’을 덥석 물어버린 나의 우매함이, 나의 끈기 없음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위약금을 선택할 것인가, 2개의 ‘노예계약’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결국 선택한 것은 현실 도피.

 

하지만 결국 내 주변인들의 90%이상이 아이폰 유저가 되었고, What’s apps을 통해 문자메시지보다 더욱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시작한 그네들의 수다는 전화보다 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툴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단지 ‘기계’일뿐일 줄 알았던 아이폰은 트렌드를 넘어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스타일’로 진화 중이다.

  


사람들의 열광은 몇몇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뛰어난 기술력과 높은 부가가치 창출하는 잠재가치 때문이 아니다. 경제적, 기술적 잣대가 아닌 나만을 위한 identity를 드러내는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다는 unique함에 경탄한다.

 

 

어떤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발 빠른 매개로, 어떤이는 여가와 유흥을 위한 도구로, 또 어떤이는 유용한 업무의 도구로 사용한다. 오늘 막 아이폰을 산 유저가 아닌 다음에야 그 누구도 똑같은 아이폰을 갖고 있을 수 없다.

 

껍데기 보다는 알맹이. 디지털이라는 외향보다는 아날로그적 컨텐츠로 소구되고, 소통하는 아이폰이 부럽다.

 

추억과 감성의 너비와 파장은 살아온 사람의 진폭만큼이나 다양해서, 이 글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 개의 유사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과 링크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마음이다. 이 역시 유유자적 아날로그적 마음일지도 모른다...

※ 본 글은 김PD가 istyle24.com에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