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에의 기록/일상 속 옹알이

숫자와 기록으로 다 알 수 없는 야구에 대한 열정 : 양준혁의 눈물나는 은퇴식

화난듯한 앙 다문 입술.

헛스윙하고 난 뒤 고개를 흔드는 포즈.

웃는 모습보다는 무뚝뚝한 표정이 더욱 익숙한 야구 선수.

화려한 쇼맨십을 선보이기 보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어하는 바보 같은 선수.
1인자의 길을 가고 있음에도 항상 2인자라 자기를 낮추고, 팀의 우승을 진심으로 바랐던 선수,
오늘은 그런 야구선수, 양준혁의 은퇴 경기가 있었습니다.
야구를 보아오면서 가장 좋아했던 선수의 은퇴를 보며 여러가지 단상에 젖습니다.

1. 그의 기록을 확인하는 일상의 변화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다음날이면 매일 아침 언제나 야구 경기 기록을 훑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보는 건 두산베어스의 전날 경기 결과와 선수들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삼성라이온즈의 전날 경기 기록지를 살핍니다.
다른 선수들의 기록은 잘 보게 되지 않습니다.
그냥 양준혁의 기록을 살핍니다. 그가 안타를 쳤는지, 볼넷을 얻었는지, 삼진을 당하지 않았는지... 아니... 출전을 했는지 먼저...
하지만 지난 7월 26일 이후, 더이상 삼성의 기록지를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양준혁은 그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덕분에 나의 일상 중 기록을 확인하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마음은 훨씬 무거워졌습니다.

2. 오해하기 쉬운 스타일, 양준혁
양준혁에 대한 오해.
'그는 타율 관리를 하기 위해 볼을 골라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구심의 판정에 불만이 많다'
'홈런을 기다리는 팬들의 순간에 볼넷을 만드는 등 큰 경기에 약하고, 해결사 능력이 없다'
사사구가 많은 그의 기록을 보면 그가 자기자신만을 위한 선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돋보이기보다는 팀을 위해 볼넷 하나로 팀의 상승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자신의 눈을 믿는 선구안에 대한 강인한 믿음으로 18년을 프로생활해왔으며,
18년간 팀의 승리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의 우직한 외모만으로 그를 오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의 무뚝뚝한 얼굴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가 이런 팬들을 전폭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한 건 그가 데뷔하고 나서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파란피가 흐르던 양준혁이 붉은 해태의 유니폼과 줄무늬 엘지의 유니폼을 입으며, 선수협을 이끌던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는 오해보다 더 큰 사랑을 받기 시작하죠.

3. 두산베어스의 팬이자, 양준혁의 팬
제가 두산베어스의 팬이 된 건 1998년의 일입니다.
그해가 삼성라이온즈가 양준혁을 버렸던 그 해였지요.
양준혁을 버린, 무너지고 있던 삼성을 버티고 있던 양준혁을 버린 삼성은 두번 다시 돌아보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원년에 어린이팬이고, 삼성 라이온즈 이후로 좋아하던 OB베어스로 응원팀을 바꾸게 됩니다.
어떻게 자기가 뛰고 싶은 팀에서 뛰기위해 수억원의 계약금을 멀리하고 군복무를 떠났던 선수를...
자신의 몸에서는 푸른 피가 흐른다던 선수를...
삼성에서 야구할 수 없다면 은퇴하겠다는 선수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내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금 두산베어스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고, 누군가 제게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물어볼 때 전 '양준혁'이름 석자를 얘기합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팬인데, 왜 김동주, 김현수가 아닌 양준혁을 가장 좋아하냐고...'
그럴 땐 얘기가 한참 길어지지만, 양준혁의 팬인 제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4. 영원한 3번타자
그는 항상 최고의 선수였지만, 그의 곁에는 그보다 더 돋보이는 4번타자들이 함께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냈지만, 팀 승리의 스포트라이트는 돌아온 4번타자 김성래였습니다.
가장 오래 짝을 맞춰온 건 YL포를 구성했던 이승엽,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이끌었던 마해영과는 모든 투수들이 겁먹을만한 팀을 중심타선을 이룹니다. 팀의 리빌딩에 맞춰서는 채태인, 박석민 등의 젊은 선수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는 마치 슬램덩크 속에 나오는 '변덕규'같습니다.
4번타자로 홈런을 치기보다 3번타자로 4번타자를 돋보이게 하는 무채같은 역할을 자처해왔으니까요.
집요한 선구안으로 투수를 지치게하고, 벼락같은 안타와 수많은 볼넷으로 테이블세터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4번타자의 타점을 돕습니다.

오늘 은퇴경기를 해설하던 '하일성해설'이 이야기하더군요.
'양준혁 선수는 홈런을 많이 치던 타자와 정교한 타자의 갈림길에서 정교한 타자를 선택했습니다. 그게 18년동안 선수생활을 훌륭하게 이뤄올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고...
하지만 난 어떤 길을 선택했어도, 양준혁은 지금만큼의 일가를 이뤘을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본인의 성품이 돋보이기보다는 묵묵히 팀을 위하고, 자신이 받는 어떤 오해보다 팀의 승리를 더욱 기뻐하는 그런 선수였으니까요.
그게 바로 양준혁이 야구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을 뿐입니다.

5. 숫자와 기록따위로 말할 수 없는 양준혁의 열정
사람들은 화려한 기록으로 양준혁을 판단합니다.
최다경기 출장, 최다타점, 최대득점, 최다안타, 최다홈런, 최다 루타, 최다사사구...
하지만 그를 한낱 몇자리의 숫자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열정은 숫자로 만들 수 없으니까요.
그는 첫등장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어쩌면 신인다운 패기인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18년을 달려왔습니다.

동시대에 등장한 이종범의 화려함에 가렸습니다. 후배 이승엽에게는 라이온킹의 영예를 주었고, 자신은 언제나 2인자라고 되뇌였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해태,LG시절은 그에게 참 힘든 시기였을겁니다.  돌아온 삼성에서 우승했던 2002년에 그의 3할행진은 처음으로 멈췄습니다.
그와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한결 같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부침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열정을 사람들은 참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알아주기 시작하며 그를 신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하지만 신이라 불리워도 그는 여전히 소박하고, 참 멋이 없습니다.
멋부리기보단 열심히 하는 것이 더 훌륭하다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야구는 기록경기입니다.
아마 이후의 수많은 야구선수들은 양준혁의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전해야하는 양준혁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들이 양준혁의 기록을 깨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그의 열정에 도전해야할 겁니다.

오늘 그 열정이, 선수로서의 양준혁의 열정은 막을 내렸지만...
아마도 오늘 전 그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야구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그의 인생의 또 다른 열정을 응원할 생각합니다.

나의 영원한 3번타자!
양준혁 선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하게... 베스트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