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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지구(Earth) : 영화가 갖는 진정성의 힘

080914 / 영화 지구(earth) /  문래CGV / 13:30~15:00 / 장인어른, 지은, 처형, 처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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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성의 힘
-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여져가고 있을 때, 가끔 예상밖의 타이밍에 '진정성의 힘'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구> 바로 그런 영화.
물론, 바쁜 추선 연휴 일정 덕분에 살짝 피곤해져서 영화보는 중간 중간 정신을 잃긴 했지만, 바로바로 가다듬고 영화에 조금씩 집중해갈 수 있었다.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는 북극. 갈라진 얼음 속에 빠져 표류한 북극곰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영화는 남극의 펭귄떼를 지나 다시 북극곰에게로 돌아오는 대장정을 펼친다.

온난한 기후의, 크릴새우 가득한 심층수 충만한 바다를 찾아 3000마일을 헤엄치는 혹등고래 모자의 사투.
세계의 지붕 희말라야 산맥을 넘기 위한 두루미떼의 힘찬 도전.
작열하는 태양으로 자기 등짝처럼 갈라진 대지를 박차고, 젖줄같은 물이 흐르는 천연의 오아시스를 찾는 코끼리 가족의 끝나지 않은 여행.
영화는 장엄한 대지의 시간 속의 찰라를 포착하여, 자연스레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숙이게 한다.
코끼리 가족과 용서를 모르는 사냥꾼 사자떼의 사투와 백상아리의 아가리를 견뎌낸 혹등고래새끼는 자신의 무용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처음 만나는 극락조의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구애 댄스와 촉촉히 젖은 시내를 건너는 개코원숭이떼의 짧은 퍼포먼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드리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스펙터클과 스릴 그리고 감동. 수많은 작화들이 아무리 많은 스펙터클과 스릴, 감동,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자연이 만들어내는 감정에 비할바 못됨을 새삼 깨닫는다.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심각한 주제의 다큐멘터리일 것이다'는 대한 심리적인 장벽만 거둬낸다면 쉽게 접근하기 더없이 좋은 영화이다.

가벼운 마음과 약간의 책임의식으로 영화를 본 후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 2030년에 멸종할지도 모르는 북극곰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세계 각국에서 각 나라의 유명 배우들을 통해 내레이션하는 것은 무척 훌륭한 마케팅이란 생각이 든다. 장동건이라는 배우의 목소리가 전문의 성우의 목소리만큼 유려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장동건이란 이름을 통해 1주일도 안돼 극장가에서 소리없이 사라질 이 영화가 하루라도 더 극장간판이 걸려있고,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느낀 것과 같이 이 영화에 진정성에 기댄 일반인들의 입소문 마케팅이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조차, 장동건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의미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의미있는 홍보활동을 펼친 장동건과 이명세감독(당연히 무보수로 진행했을거라 생각한다. 받았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좀 그런 사람일 것같다)이 훌륭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옥의 티가 장동건이며, 그에게 쏟을 출연료로 다른 홍보를 열심히 하는게 낫다고 비판하는 이들의 대안은 뭘지 궁금하다.

사족 : 진정성있는 담백한 이 영화에 대해 쓴 나의 글은 지나치게 기름진 수사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 고기튀김이 들어있는 비빔밥같아 스스로의 작법이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