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집스런 시선/Movie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껍데기만 살아있는 자아를 위로하는 나에게 쓰는 편지

20101003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 죽전 CGV / 18:00~20:20 / 지은

가끔은 잘 만든 영화는 분명 아닌데, 묘한 잔향이 남아 씻어내고 벗겨내도
지워지지 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있어.

어제 저녁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고 왔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영화의 만듦새도 그냥 그랬어.
사람들의 평이 좋지 않는 것도 당연해.

그런데 영화를 본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더욱 강렬히 향을 더해가는
묘한 외로움과 쓸쓸함의 향기가 나의 현재를 자책하게 되더라.


참 오랜만에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어.

지나치게 강한 자아와 자기애를 가진 내가 참 열심히도 살아가고 있구나.
둥글둥글하지만은 않지만 나름의 방법대로 굴러가다보니 모난 건 여전하지만 닳긴 했구나.
그런데 그게 표피적인 변화가 아니라 속으로 곯아가는 건 아닌지하는 걱정이 들었어.
8년을 행복하다는 자위와 함께 결혼생활을 지속시켜온 리즈를 보며 근원적인 나에 대한 되돌아봄 없이 어떠한 형태의 행복도 무의미할 수 있는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두렵기도 하네.

하지만 난 너무 행복하잖아.
복잡한 일터를 벗어나 집에 돌아오면 편안한 마음의 안식이 찾아들어. 
어쩌면 일터라는 괴로운 전장의 기억을 금새 잊어버리는 것이 나름대로 터득한 치열한 삶 속의 정신적 도피처였는지 몰라.
지나친 에고이스트인 나 자신에 대한 성찰보다는 현실과 표피적인 부분에서의 만족감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었을지도...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거나,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냐.
다만,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게 된 것을 눈치챈 순간 밀려오는 지독한 자괴감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괴로워.

그래서 영화 속 리즈도 떠났을거야.
나를 감싸고 있고, 나를 위로해주던 수많은 사람과 환경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성찰의 시간을 찾기 위해...
리즈는 그 시간을 1년이라 규정하고...
한껏 젖어들어있는 공허한 욕조 속에서마저도 아름답게 울리는 언어가 있는 이태리.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 속에 선택한 인도.
그리고 자신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해준 정신적 스승이 있는 발리를 선택하게 되잖아.

나는 어떨까.
나에게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어디에서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심지어는 잠을 청하는 순간에 더욱 다양한 잡념이 몰아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
정녕 나에게 필요한 건 바람에 스치는 잎새 소리 가득한 그 대나무밭인지...
한국을 알리는 홍보 영상 속 사찰 처마끝에 매달려 청아한 소리 내는 풍경걸린 고즈넉한 산사인지...
매일마다 집에서 갖는 1시간의 명상일지...
아니면 그냥 편하게 취할 수 있는 6시간의 숙면만으로도 충분한지는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는 대답. 그게 때로는 더 괴로울 수도 있지.

big lady's pants를 입어야할만큼 미친 듯이 먹어서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리즈를 보며, 이미 한껏 부푼 내 몸을 보고나서 한숨 내쉬어. 
내가 찾을 안식의 순간은 무념의 상태로 달리는 운동의 시간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순간만은 내 머리 속에 잡념들이 싹 다 사라지게 되니까말야.

그래 운동에 집중해야겠어.
먹고, 운동하고, 먹고, 운동하고...
여름철 이불을 둟고 내 피부를 핥아오는 모기의 침처럼 집요한 잡념들.
운동과 함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에 공을 들여보자. 
운동하는 시간이 나에겐 명상의 시간이 될거야.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한껏 땀에 젖은 운동복을 벗어내고 찬물에 정신을 깨우는 상쾌함.
옅은 박동으로 목숨을 연명하던 나의 정신을 되살리는 시간과 마주하자.

그게 리즈가 그렇게 오랜 시간 인도에서 수행하며 목도하게 되는 자신과 마주하는 법일 수도 있을테니 말야.


하지만...
리즈가 그렇게 돌고돌아 겨우 찾아온 균형의 정점을 찍는 사랑이라는 걸, 이미 나는 너무 잘 하고 있고, 그 안에서 행복하잖아.
어쩌면 이미 게임의 결과는 나있던 걸수도 있어.

내가 아내를 만난 순간을 기억해봤어.
디룩디룩 살쪄버린 몸 속에 감춰진 나름 명민했던 태도와 가능성.
외형적 선입견에 사로잡인 사람들과 다른 심미안을 가졌던 아내와의 만남.
아내가 나를 만난 순간 봐주었던 건 '나의 자신감'과 '나'라는 사람의 자존감이었지.
그런데 지금의 나는 자존감과는 다른 알량한 자존심과 헤픈 웃음과 구걸하는 태도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난 참 매력없는 남자가 되어가는구나.

나를 생각하고, 나를 찾자.
그것이 나의 전부인 아내와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기본이며 영화 속 리즈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삶과 존재의 이유일테니 말이다.

영화를 보고 존재의 가치까지 논하게 되는 유치한 소녀적 감성에 감사하자.
돌처럼 굳어 영화를 영화적 잣대로만 판단하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아 넘겼다면,
아마 난 또 그렇게 좀비처럼 사는 삶을 구걸하게 되었을지도 모를게다.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죽을만큼 사랑하고, 죽을만큼 이별의 고통에 눈물흘려보라고 얘기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자.
질곡많은 삶의 일부를 살아감에 있어, 존재의 이유와 가치에 대한 고민이 삶을 결정짓는 가장 큰 잣대가 된다면 얼마나 창피한가.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바닥을 찍고 차고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나에 대한 성찰을 통해, 더욱 단단한 내가 되어보자.

부끄럽지만 그게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고 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일테니 말이다.

상상치도 못한 베스트에 올랐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