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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On Stage & Exhibition

[김PD의 전시보기] 제 5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 전환과 확장

Media.
매체라고도 읽고, 프레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혹은 배양액이기도 하지.
하지만 media이라는 건 그 자체로 갖는 의미보다 '무엇'을, 또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변형의 의미를 갖게 된다.

회사 소모임인 TMA에서의 첫 방문에서 받은 강한 임팩트를 아내와 처제와 공유하기 위해 두번째 방문을 했드랬다.

늦게 찾아온 가을은 '덕수궁의 돌담'을 휘돌아 더 고즈넉한 빛깔을 낸다.
이런게 광화문 일대와 정동을 아우르는 서울의 아름다움의 정수이다.

서울 시립미술관

<확장과 전환>이라는 주제로 제 5회 서울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가 진행되었다.
빛, 소통, 시간이라는 소주제로 각 층에 전시가 진행되었다.
미디어의 전환, 경험의 확장이라는 해당 전시들의 의도는 마주하는 순간순간이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독특한 개념으로 사고하고 자신들의 머리속과 가슴속을 재현해내는 그들의 재주가, 독특한 볼꺼리로 다가오는 시각적인 임팩트가 모두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1F LIGHT
<부끄럽게 버려진 곳에서 시간을 소비하다> 2002 / 수잔빅터

1층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는 백열전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긴 줄에 매달린 백열전구들은 바닥에 깔려진 유리파편들 위에 비스듬히 놓은 거울에 부딪히며 일정간격의 소리를 내며 순환한다. 
눈높이를 낮춰 거울을 보면 내가 보이는데, 이를 보고 파편적 자아를 읽어낼 사람을 별로 없을 듯하다.
다만, 일정 박자의 엷은 타격음은 꽤나 평안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엷은 오렌지빛이 거울과 유리에 부딪혀 어두운 방안에 여릿하게 퍼지는 은은함이 좋았다.

T1(에디션5) 2008 / C.E.B. 리즈

바닥에 놓은 하얀색 원형판 위로 투영되는 홍채를 연상시키는 영상들.
특별한 느낌은 없지만 예쁜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윤회 2007 / 리후이

침대에 직접 방광다이오드를 달아놓은 것이 아닌 천정에 매달린 일정간격의 프레임에서 빛을 침대라는 매체로 쏘고 있다.
평편하지 않은 침대보는 마치 사람이 누워있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빨간 불빛은 멀리서 보면 피처럼 보인다.
철제프레임으로 된 병원용 침대를 연상시키는 침대는 이 피사체를 자연스럽게 죽음과 연결시키게 만든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위에 매달린 빛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굴레같은 느낌을 받았다.

헛된 의문 2006 / 카를로스 아모랄레스

이번 전시를 감상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들이 영상물들을 진중히 보지 못했다는 것.
10분 남짓의 영상물들을 보고 있기엔 그 전시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하루만의 관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첫된 의문은 스스로 파멸로 치닫게 하는 인간의 쓸데없는 상상력과 근심을 드러내는 것같다.
수많은 선들과 새들은 내가 머릿 속으로 만들어낸 나를 옭아매는 관념들이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 어쩌면 이런 생각도 나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클리셰 일지도...

폭탄 카메라 2007 / 줄리앙 매르

매우 인상적이었던 작품. 오른쪽에 보이는 모니터 속으로 빨갛고 파란 색깔의 화면들이 나온다.
거기에 긴박한 헬기소리, 무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굉음들이 반복적으로 들리면 이 화면은 필시 아비규환의 현장 가운데 던져진 르뽀 카메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체는 그 왼편에 자리잡은 다소 흉물스러운 철제 구조물에서 벌어지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담고 있는 필름일뿐.

활(活)역(易)마비(痲痺)-반향(反響) 2008 / 김신일

일본 TV의 광고가 투영되는 스크린 앞에 원형거울이 영상의 일부를 반사시키면 앞에 서있는 한국전통느낌의 창살(frame or media)를 통해 반대쪽 벽면으로 투영되는 영상. 일본 영상을 투영해내는 한국적인 시선에 대한 표현일까나.
위 사진은 빨간색상이 너무 예쁘게 나와서 기분 좋긴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기 1998-2008 / 헤르빅 투르크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할 수 있을까.
실험용 셰이커 두대를 마주보게 하여 한쪽엔 노란 액체가 들어있는 삼각플라스크를, 다른 한쪽에는 카메라를 얹어놓고 계속 녹화한 영상.
깨끗한 실험대 영상이 너무 예쁜 느낌이었다.

정신적인 것/회전 2007 / 홍동루

에반겔리온을 떠올리는 조형물. 그 앞에서 플레이되는 3D영상.
놀이공원에 온 느낌.

디스코 이전의 죽음 2005-2006 / 헤르빅 바이저

중저음의 사운드를 토해내는 스피커와 발광다이오드들. 중앙에 서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디스코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좋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다.
작가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을 소리, 구조, 시각 등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이, 그 재능이 부럽다.

기의 흐름(行氣) 2007 / ITRI 크리에이티비티 랩

이 사진은 일부, 검은 벽면위로 힘있는 필치의 한자들이 쓰여진다.
벽 아래에 있는 의자에 엉덩이와 팔을 올리면, 내 폐의 호흡에 따라 물고기가 움직이고 글씨가 써진다.


2F COMMUNICATION
2층은 소통의 장. 1층이 빛을 중심으로 한 설치미술이 대부분이었다면, 2층부터는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았다.

노출 2001-2008 / 마리 세스터

X-RAY롤 본 집과 트럭. 투시한 사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색상을 드러낸다면, 기꺼이 이런 시선을 갖고 싶다.

폭발:그림자 상자 4번 2007 / 라파엘 로사노-헤머

미디어 아트하면 많이 상상되는 형식의 셀프 카메라 영상물. 내 얼굴이 잘 나왔다. ^^;
각기다른 각도로 잡히는 영상들의 모자이크가 시시각각으로 그 조각이 변한다.

레논, 손탁, 보이스 2004 / 이자와 콘타

벽면에 투사되는 세개의 다른 영상. 소리가 없는 영상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상들을 보기 위해 각각의 영상 앞에 서면 머리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 사운드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통은 그 사람과의 눈을 맞추고 마주했을 때 가능하다는 단순한 이치를 말하는 것인가.
심플한 그림체가 마음에 든다.

연결된 기억 2008 / 아나이사 프랑코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
내 머리 속에 있는 내용을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면... 뇌 라도 꺼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걸까.
블루투스로 연결된 무선 전화기로 사진 혹은 메시지를 남기면, 사람머리에서 그대로 내용이 전달된다.

생명을 쓰는 타자기 2006 / 크리스타 좀머러와 로랑 미노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낡고 오래된 타자기 위로 쭈욱 빠져있는 종이. 그 위에 타이핑을 시작하면, 제대로 된 글씨가 아니라 다소 이상한 문자들이 타이핑된다.
그 후 타자기 이동레버를 밀어 누르면 타이핑된 글자들이 모아지면서 벌레같은 생명체를 이뤄 하얀색 종이위를 활주한다. 이렇게 생명체를 만들어내면, 그 벌레는 내가 타이핑한 글을 먹고 자라나고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내면 서로 움직이며 부딪혀 하얀 종이 가득 생명체가 나타난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부딪히여 살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산다.

테이블 위의 백설공주 2008 / 서효정

하얀 테이블 위에 차려진 숲. 그 속에 외로운 백설공주.
테이블 위 몇군데에 펼쳐진 마그넷위에 백설공주 인형을 올리면 그림자들이 튀어나와 새로운 백설공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만들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아닌,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백설공주 동화.

점프 2005 / 야신 셉티

점프하라. 자연스럽게... 네 마음대로...
단 옆에 사람과 소통하라. 그럼 더 멋진 퍼포먼스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소통은 기본적인 것이다.
구령에 맞춰 함께 뛰어오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

한 병의 일기(日氣) 2008 / 이준

섞을 수 없는 것들을 무작위로 선택, 병 속에 넣어 흔들어 섞으면 해당 내용들을 표현하는 사운드와 빛으로 표현된다.
두번째 방문에서는 직접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

감독의 의자 2007 / 진기종

고집불통. 난공불락의 성. 촬영현장에서의 감독의 의자. 권위만 드높이고 마이크는 뒤로한 소통을 거부한...
딱 감독이 아니어도 된다. 지금의 누군가가 떠오르는구나.
이 사진이 한 2메가 정도 되나...

CNN과 알자지라 2007 / 진기종

동일한 현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두 시선.
루틴하게 반복되는 홍보영상같은 미디어에 대한 비판일수도 있고...
거대한 자본주의의 미디어와 허름하기 짝이 없는 반대측의 미디어.
애초부터 승부가 되지 않아. 이모두 당신들의 자작극. 누가 만들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해.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 (No.3) 2006 / 마커스 한젠

두 사진에서 뭘 느낄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표정을 따라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왜 서로 닮아가는지에 대한 해답.
혹은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 혹은 팁.
그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라. 그럼 표정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행동 등을 알게 될테니...
이것이 소통이다. 들어주기. 바라봐주기.

Breaking the News - 뉴스자키되기 2007 / 마크 리

검색창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 중 내가 원하는 정보를 선택하고 내 방식으로 해석하는 즉, news라는 이름이 무색한 나만의 정보가 나온다. 난립하는 미디어의 폐해. 혹은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윤리관과 세계관에 의해 조작되는 현실 비판.

대화 2008 / 크리스토퍼 토마스 알렌(라이트 서젼)

두대의 컴퓨터가 모니터를 점멸하며 대화를 한다.
마주보지 않고, 서로 대화하는 듯하지만, 그들이 쫓는 것은 대화의 진의를 찾기 위한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문장들을 새로운 소통을 만들어내는 듯도 하다.

강아지 마을 2008 / 원성원

허름한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마을. 마을을 단뜩 뒤덮은 개들.
실사 사진 속에 강아지를 합성한 작가만의 마을. 독특한 색감과 느낌이 마음에 드는...

자매의 전쟁 2008 / 원성원

백설공주 옷을 입은 언니는 대지의 나이트엘프, 수영복을 입은 동생을 돌고래떼를 이끄는 포세이돈의 딸.
가상의 공간 속에 만들어진 자매의 대결이 재밌게 표현되다.

3F Time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리라 믿었던 철없던 첫사랑에 아파하던 시기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 덮어지길 바라며, 마음 졸이던 미니카세트를 훔쳤던 5학년때가 있었다.
시간이란 기다리면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잡아서 내것을 만들었을 때 내게 유용하게 써줘서 고맙다고 하는 그런 존재.

백만장자가 되는 백만가지 방법 2007- / 다미엔 온티베로스 라미레즈

작가도 아직 다 알아내지 못한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
열심히 일하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

최후의 반란 2005-2007 / AES+F group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다 본 영상물. 물론 졸면서...
보이지 않는 실체와 벌이는 끊임없는 싸움. 화산이 폭발해도 그것이 사라지진 않는다. 끝까지 계속될 순환의 알레고리.

지얼의 가축 2002-2008 / 양푸동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기다른 시각. 버려진 수트케이스 속에 널부러진 수많은 내용들.
결국은 프레임이고, 시각이다.  해석을 통해 달라지는 사건의 진의.

인산인해 2005 / 뮌

하얀깃털로 만들어진 흉상. 그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영상이 투영된다. 점점 그 수가 늘어나서 흉상을 가득 채우면, 흉상 뒤의 선풍기가 바람을 불어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다.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받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어디에도 없는 2007 / 카를로스 코로나스

보여지는 실체를 부정하는 제목. 얽힌 배선들을 무시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네온사인들.

나름대로 미디어 아트 읽기.
새로운 시선을 넓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즐거운 경험이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또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