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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런 시선/Movie

[김PD의 영화보기] 엑스맨의 탄생-울버린 : 엑스맨 시리즈, 스스로를 구원하라

090501 / 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X-men Origins : Wolverine) / 메가박스 삼성 / 10:30~12:18


어쩌면 엑스맨 시리즈는 '브라이언 싱어'가 떠난 순간에 접어야했었는지도 모른다.

자존적 고민이 사라진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속 진 그레이의 광기어린 눈빛은 그렇다쳐도, 다양한 변종 돌연변이들이 펼치는 다양한 액션의 향연은 엑스맨의 잉태자 '브라이언 싱어'가 울고 갈만큼 쓸쓸한 화려함이었다. 팬들은 전작들의 변종 히어로의 우수에 찬 눈빛으로 고뇌하던 영웅들을 잃었음에 탄식했고, 괴로움에 잠못 이룰 정도였다. 그런데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을 보면서 느낀 괴로움의 쓴 맛은 왠지 익숙했다.
 
'팀 버튼'이 배트맨을 떠났을 때처럼 말이다.

<배트맨 포에버>로 찾아온 발킬머의 배트맨은 마이클 키튼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남근이 강조된 매끈한 배트수트와 섹시함만 남았었다.  


Mr. Enigma 초록색 쫄쫄이 짐캐리와 투페이스 토미 리 존스의 연기력은 잭니콜슨의 조커와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 데니 드비토의 펭귄맨의 과거를 지닌 악역들과 비견될 수 없을 만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그저그렇게 소모되었을 뿐이다.
졸렬한 구성과 싸구려 액션이 난무했던 졸작 <배트맨 & 로빈>의 등장으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론적 고뇌하는 영웅은 사라졌다.
<배트맨 포에버>에서 영웅을 잃은 팬들은 <배트맨 & 로빈>에서는 '배트맨'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고뇌하는 배트맨은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타올라 사그라들 것 같았던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팀 버튼' 이후, 또 다른 구원자 '크리스토퍼 놀란'을 를 만나, 브루스 웨인의 과거, 혹은 배트맨 탄생의 배경을 찾아간다. 또 다른 Prequel의 시작, <배트맨 비긴즈>였다.

우스꽝스러운 형형색색의 코스프레의상들과 현란한 액션으로 점철된 그저그런 액션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쇠락해가던 '과거의 영웅' 배트맨이, 음울한 자기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구도가적 선문답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울한 영웅'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던 배트맨의 과거를 느릿하게 따라가며, 액션은 뒤로 하고 불안정한 자신의 과거를 너무 차분하게 인정하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이같은 발걸음에 떠나갔던 '팀 버튼'의 팬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창조한 또 다른 세상에 감탄하고, 그가 잊혀져간 '팀 버튼' 왕국을 재건해준 것에 열광했다. 

<배트맨 : 다크나이트>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화려한 왕의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수많은 수퍼히어로물들중에 <엑스맨>이 <배트맨>과 맞닿아있는 건 운명과 같다. 자신의 데칼코마니같은 비뚤어진 악당들을 마주하며 연민을 함께 느끼는 '배트맨'은 자신의 동족과 싸워야만하는 '엑스맨'이 처한 운명과 같다. 마치 자신을 거부하는 세상에게서 칼을 거두어 자신의 목으로 칼을 겨눈 형국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그런 '엑스맨'의 존재에 대한 괴로움에 주목하며, 영원히 풀리지 않는 굴레 속 벗어날 수 없는 슬픈 영웅들의 사랑과 성장기를 얘기한다.

사랑에 상처받은 '울버린'이 아닌 '로건'은 사랑을 할수 없는 저주받은 운명의 '로그'와 서로를 보듬는다. '진 그레이'는 그런 '로건'을 사랑하게 되고, 아이같은 그들은 외부와의 싸움이 아닌 내부에서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은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같다. 매그니토와 자비에 교수는 서로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빛을 발하는 심리적 동료와 같은 느낌으로 서로를 대한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가 떠난 엑스맨은 그렇게 연민과 반목을 거듭하던 자비에교수의 엑스맨과 매그니토의 돌연변이들은 인간을 공적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하며 화합한다. 그 과정중에 어떤 고뇌의 과정도 없었다.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엑스맨>이 선택한 길도 '화려함'의 길이었다. 각종 특수효과와 각양각색의 기술을 사용하는 신종 엑스맨들의 등장으로 눈길을 끌려했다. 그렇게 일정 정도의 힘을 실었지만,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을 사랑하던 팬들은 엑스맨을 떠났다.
그리고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엑스맨>이 선택한 길도 역시, 엑스맨 탄생에 대한 spinoff시리즈 느낌의 prequel인 <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은 전작은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간다. 새로 알려진 울버린의 과거, 세이버투스와의 관계는 기대했던 것보다 단순하고 그마저도 인물들의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보다 세이버투스의 폭력성과 울버린의 평화주의적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짓고 영화를 시작한다. 즉, 울버린은 원래 평화주의자인데, 형인 세이버투스의 폭력성으로 어쩔수 없이 온몸에 아다만티움을 박은 살인 병기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울버린은 계속 좋은 인물로만 그려지만 그가 인간병기의 길을 선택한 것이 세이버투스와 윌리엄 스트라이커의 간계로 인한 것으로 그려지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세이버투스와 울버린이 전쟁에서 어떤 전과를 올리며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똑같다. 세이버투스가 조금 더 폭력적인 성향을 발현했을 뿐 전쟁터에 뛰어든 그 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로건이 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엑스맨>에서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던 '로건'이 <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폭력성을 부정하기만 하는 단선적 인물로 그려지는 건 불만이라는 거다.



영화<엑스맨의 탄생 : 울버린>은 그리 못만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엑스맨>시리즈를 사랑했던 팬의 입장으로 그리 달가운 영화도 아니다. 액션에 치중하는 무적의 영웅을 만나기 위해서 <엑스맨>을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론적 자아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적 영웅의 면모가 그들을 우리가 사랑했던 이유이며, 엑스맨의 특별한 능력을 <판타스틱 4>의 특수효과를 위한 캐릭터로 소모하길 바라지 않라는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결국 엑스맨을 구원할 이는 '브라이언 싱어'일까, 아니라면 제 2의 '크리스토퍼 놀란'을 찾아야할런지도 모르겠다.

덧 : 다니엘 헤니가 연기한 Agent Zero는 정말 다니엘 헤니에게 어울리는 역할도 그렇다고 영화 속에서 크게 하는 역할도 없다. 적잖은 존개감을 드러낸 '다니엘 헤니'가 자랑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가 한국에서 드러냈던 한결 여유롭고 꽤나 괜찮은 연기력을 펼쳤던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몇장면 되지 않는 영화 속 연기가 그렇게 부자연스러우면 어쩌란 말이냐. ㅠㅠ